도정몰와부[跳井沒蛙跗] 우물에 뛰어든 개구리는 발만 잠기면 낙이 됨. 장자(莊子) 추수(秋水)에, 우물 안에 사는 개구리가 동해 바다에 사는 자라에게 “아 즐겁구나. 나는 우물 밖으로 튀어나와서는 우물 난간 위에서 깡충 뛰놀다가 우물 안으로 들어와서는 깨어진 벽돌 끝에서 쉬곤 한다. 물에 들어가서는 두 겨드랑이를 물에 찰싹 붙인 채 턱을 지탱하고 진흙을 찰 때는 발이 빠져 발등까지 잠겨 버리지. 장구벌레와 게와 올챙이를 두루 돌아봄에 나만 한 것이 없다네. 게다가 구덩이 물을 온통 독점하며 우물 안의 즐거움을 내 멋대로 한다는 것, 이 또한 최고일세. 그대도 이따금 와서 들어와 보지 아니하겠는가.[吾樂與! 出跳梁乎井干之上, 入休乎缺甃之崖. 赴水則接腋持頤, 蹶泥則沒足滅跗. 還虷蟹與科斗, 莫吾能若也. 且夫擅一壑之水, 而跨跱埳井之樂, 此亦至矣. 夫子奚不時來入觀乎?]”라고 말하는 내용이 있다.
도정백[陶貞白] 남조(南朝) 제(齊)나라 은사(隱士) 도홍경(陶弘景)으로, 정백(貞白)은 그의 시호이다. 그는 솔바람 소리를 워낙 좋아하여 정원에 모두 소나무를 심어 놓고 마음의 위안으로 삼았는데, 그가 산수 사이를 홀로 거닐면 보는 이들이 모두 신선으로 여겼다는 기록이 있다. <南史 卷76 陶弘景列傳>
도정절[陶靖節] 도연명(陶淵明)으로, 자(字)는 연명 또는 원량(元亮), 이름은 잠(潛)이고, 시호는 정절(靖節)이다.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였을 때 동림사(東林寺)의 혜원(慧遠)과 교유하였다. 진(晉)나라 고승인 혜원(慧遠)이 호계(虎溪)를 건너지 않는 계율을 지키고 있었는데, 도연명(陶淵明)과 육수정(陸修靜)을 배웅할 때 이야기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호계를 건넜으므로, 세 사람이 크게 웃으며 헤어졌다는 호계삼소(虎溪三笑)의 고사가 유명하다.
도정절[陶靖節] 정절(靖節)은 동진(東晉)의 시인 도잠(陶潛)의 사시(私諡)인 정절징사(靖節徵士)의 약칭이다. 그는 명장(名將) 도간(陶侃)의 증손으로서 일찍이 팽택 영(彭澤令)이 된 지 80여 일 만에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고 벼슬을 떠나 전원(田園)에 은거하였다. <宋書 卷93 隱逸列傳 陶潛>
도정폐충혼[都亭斃忠魂] 도정(都亭)은 고을 치소(治所)에 있는 정자이다. 후한(後漢) 안제(安帝) 때의 충신 양진(楊震)이 환관을 탄핵하다가 오히려 면직되어 돌아가던 중 낙양(洛陽)의 도정에서 음독 자결하였다. 이후 후한은 환관이 발호하여 쇠망하게 된다. <後漢書 卷54 楊震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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