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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공대아[陶朱公大兒], 도주몽[刀州夢], 도주민[道州民], 도주요순[陶鑄堯舜]


도주공대아[陶朱公大兒]  도주공(陶朱公)의 맏아들. 도주공(陶朱公)은 월왕(越王) 구천(句踐)의 재상이었던 범려(范蠡)이다. 구천(句踐)과 힘을 합하여 오(吳)나라를 멸망시킨 범려(范蠡)가 월(越)나라를 떠나 거부(巨富)가 되었을 때, 그의 둘째 아들이 죄를 지어 초(楚)나라의 옥에 갇혔다. 범려(范蠡)는 자식의 구명을 위해 막내아들을 보내려 하였지만, 맏아들이 장남으로서 체면을 내세우며 필사적으로 자신이 가야겠다고 고집을 부리므로 하는 수 없이 맏아들을 보내었다. 하지만 범려(范蠡)가 우려한 대로 구명하러 갔던 큰아들이 재물을 아끼려다 결국 둘째 아들을 잃고 말았다는 고사가 사기(史記)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에 나온다. 재물을 아끼려다 낭패하게 된 사람을 비유한다.

도주노도[陶朱老饕]  도주공의 노욕. 도주(陶朱)는 도주공(陶朱公)의 준말로, 춘추 시대 월(越) 나라 대부 범려(笵蠡)의 별칭이다. 월왕 구천(勾踐)을 도와 오(吳) 나라를 멸망시킨 뒤에 벼슬을 버리고 도(陶) 땅으로 들어가 주공(朱公)으로 행세하며 거금(巨金)을 벌어 번번이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41 越王句踐世家>

도주몽[刀州夢]  진(晉) 나라 때 왕준(王濬)이 집의 대들보 위에 칼 세 자루가 매달려 있는 데다 다시 칼 한 자루가 더 매달리는 꿈을 꾸고는 흉조(凶兆)라고 여기었다. 이의(李毅)가 이를 해몽하기를 “삼도(三刀)는 주(州) 자가 되고, 거기다 또 칼 한 자루가 더해졌으니, 당신께서는 익주(益州)를 맡게 될 것입니다.[三刀為州字, 又益一者, 明府其臨益州乎.]”라 하였는데, 그 뒤에 과연 왕준이 익주 자사(益州刺史)가 되었다. <晉書 卷42 王濬列傳>

도주민[道州民]  도주(道州)의 백성들에 대해 읊은 시의 제목이다. 백장경집(白長慶集) 풍유(諷諭)에 보인다.

도주시구[道州詩句]  당(唐) 나라 때의 직신(直臣) 양성(陽城)이 직간(直諫)을 했던 관계로 도주 자사(道州刺史)로 좌천되었을 적에 매우 선정을 베풀어 큰 업적을 이루었으므로, 이에 대하여 백거이(白居易)가 도주민(道州民)이란 제목으로 시를 지어 양성의 선정을 크게 격찬한 것을 가리킨다. <唐書 一百九十四>, <白樂天詩集 卷三>

도주요순[陶鑄堯舜]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의 “그분은 먼지와 때 그리고 쭉정이와 겨 같은 것을 가지고도 장차 요순을 빚어낼 수 있는 분인데, 뭣 때문에 외물을 일삼으려고 하겠는가.[是其塵垢粃糠 將猶陶鑄堯舜者也 孰肯以物爲事]”라는 말을 차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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