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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팽택[陶彭澤], 도팽해아[倒綳孩兒], 도평군[都平君],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


도팽택[陶彭澤]  도팽택은 일찍이 팽택 영(彭澤令)을 지낸, 동진(東晉)의 시인이자 처사(處士)인 도잠(陶潛: 도연명陶淵明)을 가리킨다. 도잠이 팽택현(彭澤縣)의 현령(澤令)으로 있을 적에 군(郡)에서 독우(督郵)가 나오게 되었는데, 아전이 도잠에게 독우가 오면 의관을 갖추고 맞이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자 도잠은 “나는 다섯 말의 쌀을 얻기 위하여 향리(鄕里)의 소아(小兒)에게 허리를 굽히지 못하겠다.”라 하고는, 관직을 떠나 전원으로 돌아가면서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었다. <晉書 卷94 隱逸列傳 陶潛>

도팽택가계주수양도[陶彭澤家繋舟垂楊圖]  도팽택(陶彭澤)은 진(晉)나라 은사(隱士)인 도연명(陶淵明)을 가리킨다. 그가 팽택현령(彭澤縣令)을 역임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도연명이 집 주위에 수양버들 다섯 그루를 심고 자신을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불렀다. 즉 도연명의 집 앞 수양버들에 배를 매어둔 광경을 그린 그림이다.

도팽해아[倒綳孩兒]  아이를 거꾸로 업다. 평소에는 아주 익숙하게 처리하는 일을 급하거나 방심하고 있을 때는 실수를 할 수 있으므로 늘 경계하고 부지런히 익혀야 한다는 뜻이다.

도평군[都平君] 제(齊)나라의 안평군(安平君) 전단(田單)을 이른다. 평도군(平都君)으로 쓰인 곳도 있다. 전단(田單)은 제(齊)의 소족(疏族)으로 즉묵(卽墨)이 연(燕)에 포위되었을 때 이를 물리치고 제를 수복하여 천하에 그 이름을 떨쳤다. 안평군(安平君)에 봉해졌으며, 양왕(襄王)을 도왔다. <史記 樂毅田單列傳>

도평왕창[東平王蒼]  후한 광무제(後漢光武帝)의 아들로서 예악(禮樂)과 제도를 제정할 것을 강조하고 그 제작에 참여하였다.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  고려(高麗) 충렬왕(忠烈王) 5년(1279)에 국초의 도병마사(都兵馬使)를 개칭한 관아이다. 나라의 중대한 일이 있으면 소속된 관원 중 사(使), 곧 3품 이상이 회의하여 처리하였으므로 합좌(合坐)의 이름이 생겼고, 첨의부(僉議府)와 밀직사(密直司)의 대신이 합좌하여 일반적인 정치 문제도 논의함으로써 최고 의정 기관으로 변모하였다. 고려 말에는 서무(庶務)를 집행하는 권한도 갖게 되어 명실공히 최고의 정치 기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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