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수[桃花水] 도화수(桃花水)는 복사꽃이 필 무렵에 얼음이 녹고 비가 내리고 하여 불어난 하천(河川)의 물을 말한다. 도화랑(桃花浪)이라고도 한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중춘의 달에는……비로소 우수 절기가 이르고, 복숭아꽃이 비로소 핀다.[仲春之月……始雨水 桃始花]”라고 하였고, 장지화(張志和)의 어부가(漁父歌)에 “서새산 앞에는 백로가 날고, 복사꽃 흐르는 물엔 쏘가리가 살졌네.[西塞山前白鷺飛 桃花流水鱖魚肥]”라고 하였고, 왕유(王維)의 시 도원행(桃源行)에 “봄이 되어 모두가 복사꽃 떠 있는 물인데, 도원(桃源) 길 모르겠네, 어디 가서 찾을지.[春來遍是桃花水, 不辨仙源何處尋.]”라고 하였다.
도화설수[桃花雪水] 복숭아꽃과 눈을 섞은 물. 사략(史略)에 “북제(北齊) 때에 노사심(盧士深)의 처 최씨(崔氏)는 최임의(崔林義)의 딸인데, 재학(才學)이 있었다. 봄이 되면 복숭아꽃과 눈을 섞어 아이의 뺨을 씻으면서 빌기를 ‘붉은 꽃과 흰 눈으로 아이 낯을 씻기니 기쁜 빛이 있게 하고. 흰 눈과 붉은 꽃으로 아이 얼굴을 씻기니 환히 아름답게 빛나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그 뒤로 도화설수(桃花雪水)로 뺨을 씻으면 용모를 곱게 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北齊盧士深妻, 崔林義之女, 有才學, 春日以桃花拌和雪給兒子洗臉, 咒曰: 「取紅花. 取白雪. 與兒洗面作光悅 ; 取白雪, 取紅花, 與兒洗面作光華.」 後傳桃花雪水洗臉能使容貌姣好.]”라고 하였다.
도화수창[桃花水漲] 복사꽃 필 무렵 불어난 봄 강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도화암[桃花岩] 이백(李白)이 안륙(安陸)에 살 때 독서하던 곳이다.
도화우[桃花雨] 복사꽃이 필 무렵에 내리는 봄비를 이른다. 발화우(潑火雨)라고도 한다. 한식절에는 불을 금하였기 때문에 이때에 내리는 비를 발화우(潑火雨)라고 한다.
도화원[桃花源] 도잠(陶潛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이상향을 가리킨다. 진 무제(晉武帝) 연간에 무릉(武陵)의 한 어부가 시내를 따라 한없이 올라가다가 도화림(桃花林)을 지나 별천지(別天地)인 절경(絶境)에 들어가서, 일찍이 진(秦) 나라 때에 피난 와서 산다는 사람들을 만나 대접을 잘 받고 돌아왔는데, 그 고을 태수(太守)가 그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그곳을 다시 찾으려고 했으나 길을 찾지 못했고, 고사(高士)인 유자기(劉子驥) 또한 그곳에 가려고 했으나 가지 못하고 죽음으로써 마침내 나루를 묻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고 한다. <陶淵明集 卷6> 이백(李白)의 시 고풍(古風 15)에 “사람들이 도화원으로 떠나간 뒤로, 천 년 동안 바깥세상과 떨어져서 살았네.[一往桃花源, 千春隔流水.]”라고 하였다.
도화원기[桃花源記] 도연명집(陶淵明集)에 도화원기(桃花源記)가 수록되어 있는데 전반부는 산문으로, 후반부는 시로 서술하였다. 전반부의 내용은 대략 “무릉(武陵)의 한 어부(漁父)가 한없이 시내를 따라 올라가다가 갑자기 도화림(桃花林)을 만나서 그 안으로 들어가 보니, 광활한 하나의 별천지(別天地)가 있고 그곳에는 남녀 노인들이 아주 평온하게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선세(先世)에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해 이곳에 들어와 살고 있다면서, 진(秦)나라 이후로 한(漢)과 위진(魏晉) 시대가 있었음을 전혀 알지 못하므로, 그 어부가 그 사실을 일일이 갖추어 말해 주자, 그들이 모두 놀라 탄식하였으며, 수일 동안 훌륭한 대접을 받고 집에 돌아왔는데, 그 후에 남양(南陽)의 고사(高士) 유린지(劉驎之 자는 자기(子驥)임)가 그 소문을 듣고 좋아하여 친히 갔으나 끝내 그 나루를 찾지 못하고 말았다.”는 내용이고, 후반부의 시는 32개 구(句)로 이루어져 있는 고시(古詩)인데, 도원촌(桃源村)의 유래를 말한 후에 문물, 풍속, 삶의 태도 등을 기술하고 마지막 8개 구에 논평과 감회, 자신의 지취를 담았다.
도화원수[桃花源水]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어부가 복사꽃 떠내려오는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서 이상적인 세계를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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