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후무문[陶後無聞] 송(宋)나라 주돈이(周惇頤)의 애련설(愛蓮說)에 “아, 국화를 사랑한 이가 도연명 이후로 또 있었다는 말은 거의 듣지 못하였다.[噫 菊之愛 陶後鮮有聞]”라는 말에서 온 것이다.
도후중[陶垕仲] 명(明)나라 태조(太祖) 때 사람으로 이름은 주(鑄), 후중(垕仲)은 그의 자(字)이다. 벼슬은 감찰어사(監察御史)를 거쳐 복건안찰사사(福建按察司使)에 이르렀는데, 청렴 강직하였다. <明史 卷140 陶垕仲列傳>
도훈제후[導訓諸侯] 제후(諸侯) 중에서 덕망(德望)이 있는 제후(諸侯)를 골라 제후(諸侯)의 장(長)으로 삼아 제후(諸侯)를 교도(敎導)하고 훈계(訓戒)하는 일을 이른다. 백주(伯主)로서 제후(諸侯)들을 통솔하여 왕실(王室)을 받들며 왕명(王命)을 따르지 않는 제후(諸侯)를 토벌하는 책임과 권한을 가졌다. 왕실이 쇠미(衰微)한 뒤에는 성격이 바뀌어 힘이 강한 제후가 스스로 백주(伯主)가 되어 제후의 질서를 잡고 왕실을 압박하기도 하였다.
도휴[稻畦] 볏논. 벼를 심는 논이나 밭을 가리킨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 자양서형비차이거동둔모옥(自瀼西荊扉且移居東屯茅屋)에 “양수의 동쪽과 양수의 서쪽에서, 한결같이 시냇가에 거주하노니, 오거나 가거나 모두가 띳집인데, 머무름은 농사를 짓기 위함일세.[東屯復瀼西 一種住淸溪 來往皆茅屋 淹留爲稻畦]”라고 하였다.
도흔[刀痕] 칼에 베인 흉터를 이른다.
도흡[到洽] 양서(梁書) 도흡전(到洽傳)에서 “흡(洽)은 자(字)가 무연(茂㳂)이고 팽성(彭城) 무원(武原) 사람이다. 보통(普通) 6년에 어사중승(御使中丞)이 되었는데, 잘못을 찾아내어 바로잡는 데 망설임이 없고, 굳세고 곧음으로 이름이 났으며 당시 세상이 맑았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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