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시기[讀詩記] 송 나라 여조겸(呂祖謙)의 여씨가숙독시기(呂氏家塾讀詩記) 32권을 말한다. 사고전서에 수록되어 있다.
독신호학[篤信好學] 논어(論語) 태백(泰伯)에 “독실하게 믿으면서 학문을 좋아할 줄 알아야 하고, 죽음으로 지키면서 도를 잘 행할 줄 알아야 한다.[篤信好學 守死善道]”라 하였고, 술이(述而)에 “전술하고 창작하지 않으며 옛 도를 믿고 좋아하는 것을 가만히 우리 노팽에게 견주노라.[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라고 한 공자의 말이 나온다.
독아[獨我] 오직 나만.
독아론[獨我論] 실재하는 것은 오직 자아와 그 의식뿐이며, 그 밖의 타인이나 사물은 모두 자아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이론이다.
독안룡[獨眼龍] 척안(隻眼)으로 용기 있는 사람. 후당(後唐)의 태조(太祖) 이극용(李克用)을 이른다. 오대사보(五代史補) 권2에 “태조(太祖)가 태어남에 한쪽 눈이 실명하였는데, 장성하자 용맹하고 기사(騎射)를 잘하여 앞에 대적할 이가 없었으니 당시에 독안룡(獨眼龍)이라 불렀다. 부락 사람들에게 크게 미움을 받자 태조가 화가 미칠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가족을 데리고 당(唐)나라에 귀부(歸附)하니, 당(唐)나라에서 운주자사(雲州刺史)를 배수하고 이씨(李氏) 성(姓)과 극용(克用)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至太祖生 眇一目 長而驍勇善騎射 所向無敵 時謂之獨眼龍 大爲部落所疾 太祖恐禍及 遂擧族歸唐 授雲州刺史 賜姓李名克用]”라고 하였다.
독안룡[獨眼龍] 애꾸눈인 용. 애꾸눈의 영웅(英雄). 애꾸눈의 영웅 또는 용맹한 장수, 애꾸눈의 고덕(高德)한 사람이란 뜻이다. 당나라 18대 황제인 희종(僖宗)때, 산동(山東) 출신인 황소(黃巢)는 왕선지(王仙芝) 등과 반란을 일으킨 지 5년 만에 10여 만의 농민군을 이끌고 마침내 도읍인 장안에 입성했다. 그리고 스스로 제제(齊帝)라 일컫고 대제국(大齊國)을 세웠다. 한편 성도(成都)로 몽진(蒙塵)한 희종은 돌궐족(突厥族) 출신인 맹장 이극용(李克用)을 기용하여 황소 토벌을 명했다. 당시 4만 여에 이르는 이극용의 군사는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사정없이 맹공을 가했기 때문에 반란군은 ‘갈가마귀의 군사[鴉軍]가 왔다!’며 심히 두려워했다고 한다. 19대 황제인 소종(昭宗)이 즉위한 그 이듬해 마침내 반란군은 토멸되었고 황소도 패사(敗死)하고 말았다. 이극용은 그 공에 의해서 농서 군왕(郡王)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이극용은 숙적 주전충(朱全忠)과 정권을 다투다가 패하고 실의 속에 세상을 떠났다.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 주전충은 20대 황제인 애종(哀宗)을 폐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후량(後梁)을 세웠으나 16년 후 이극용의 아들 이존욱에게 멸망했다. 오대사(五代史) 당기(唐記)에는 “이극용은 젊고 효용(驍勇:사납고 날쌤)했는데 군중(軍中)에서는 이아아(李鴉兒)라고 일컬었다. 그의 눈은 애꾸눈이었다. 그가 귀한 자리에 오르자 일컬어 독안룡(獨眼龍)이라고 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독안용[獨眼龍] 애꾸눈[獨眼]으로 무용(武勇)이 아주 뛰어난 사람을 이른다. 구오대사(舊五代史) 권25 당서(唐書) 무황기(武皇紀)에 의하면 “무황이 이미 장안을 수습하여 군세가 매우 강성하자, 제후들의 군대가 모두 그를 두려워했던바, 무황은 한쪽 눈이 애꾸였으므로, 당시에 그를 독안룡이라 호칭했다.[武皇旣收長安 軍勢甚雄 諸侯之師皆畏之 武皇一目微眇 故其時號爲獨眼龍]”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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