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獨倡] 혼자 부르다. 혼자 떠들다. 독창(獨唱)과 같다. 소식(蘇軾)의 시 궤세(饋歲)에 “관사에 벗할 사람 많지 않은데, 골목에선 좋은 시절 지나가고 있네. 시골의 풍속을 흥성케 하려 해도, 나 혼자 떠들어도 들어주는 이 없네.[官居故人少, 里巷佳節過. 亦欲舉鄕風, 獨倡無人知.]”라고 한 데서 보인다.
독창근제[督昌覲帝] 고려 창왕(昌王)이 중국 명 태조(明太祖)를 직접 찾아가 사실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시 신흥 제국인 중국 명(明) 나라와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하여 명에서는 철령(鐵嶺) 이북의 땅을 자기들이 차지하겠다고 하였다. 이를 계기로 최영(崔塋)은 팔도도통사(八道都統使)가 되어 요동정벌(遼東征伐)을 착수했는데, 이성계(李成桂)의 위화도 회군으로 그 계획이 좌절되고 최영이 밀려난 후 이성계에 의하여 문하시중(門下侍中)이 된 이색(李穡)은 주장하기를 “지금 국가 관계에 틈이 생겨서 왕과 집정(執政)이 친조(親朝)를 않고서는 해결할 수가 없는데, 왕은 어려서 갈 수가 없으니 늙은 내가 모든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다.”라 하고는 자청하여 경사(京師)에 갔었다. <牧隱集 行狀>
독창문호[獨倡門戶] 한 문호(門戶)를 창건(創建)함이다. 한문공문초인(韓文公文抄引)에 “서(書)‧기(記)‧서(序)‧변(辯)‧해(解)와 그 밖의 잡저(雜著)는 한공(韓公: 한유韓愈)이 독창(獨創)한 문호(門戶)이니 비교하면 달마(達摩)가 서역(西域)에서 와서 선문(禪門)을 독창(獨創)한 것과 같다.[書記序辯解及他雜著, 公所獨倡門戶, 譬則達摩西來, 獨開禪宗矣.]”라고 한 데서 보인다.
독책[督責] 독촉하다. 꾸짖다. 몹시 재촉함. 몹시 책망(責望)함. 유종원(柳宗元)의 시 전가(田家)에 “마을의 아전 밤에도 돌아다니니, 닭 잡고 기장밥 지어 술자리 마련하네. 각기 말하기를 관장(官長)이 준엄하여, 문자(文字)에 독책(督責)함이 많다 하네.[里胥夜經過, 鷄黍事筵席. 各言官長峻, 文字多督責.]”라고 한 데서 보인다.
독책지술[督責之術] 조정에서 인민을 구박하여 심하게 부리는 술책을 이른다. 사기(史記) 권87 이사열전(李斯列傳)에 보이는데, 진승(陳勝)의 난 등 도처에 반군의 세력이 치성하자, 이세(二世) 황제는 이사(李斯)가 삼공(三公)의 지위에 있으면서 이를 막지 못하였다고 여러 차례 책망하였다. 이사는 이를 두려워하여 마침내 이세의 뜻에 영합하여 “어진 군주는 반드시 독책하는 방법을 잘 행하여 홀로 위에서 결단합니다. 이렇게 하면 신하들과 백성들이 자신의 죄과를 구원하기에도 여유가 없을 것이니, 어찌 변란을 감히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賢主必能行督責之術 以獨斷於上 群臣百姓 救過不給 何變之敢圖]”라고 하여 독책을 행할 것을 간언하였는데, 이세가 이를 기뻐하여 세금을 많이 거두고 사람을 죽이기를 많이 한 자를 훌륭한 관리라고 여기니 형벌받은 자가 길 가는 사람 중에 반이나 되었고 시신이 날마다 저자에 쌓여갔다. 이로 인해 진(秦)의 백성들이 더욱 놀라고 두려워하여 반란할 마음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史記 卷87 李斯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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