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항[督亢] 전국시대(戰國時代) 연(燕)나라의 기름진 지역으로,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함현(檻縣) 부근이다. 옛날에 형가(荊軻)가 연나라 태자 단(丹)을 위해 진 시황을 죽이러 갈 때 독항 지역을 그린 지도인 독항도와 진나라에서 죄를 짓고 망명한 번오기(樊於期)의 목을 가지고 진나라로 들어가 진 시황에게 바치면서 진 시황을 찌르려고 하다가 실패하였다. <史記 卷86 刺客列傳 荊軻>
독항구[督亢溝] 백구하(白溝河)의 옛 이름이다.
독항도[督亢圖] 전국 시대 연(燕) 나라의 기름진 땅인 독항(督亢)의 지도이다. 연 태자(燕太子)가 진시황(秦始皇)을 죽이려고 자객(刺客) 형가(荊軻)를 보내며, 신물(信物)로 독항(督亢) 땅을 바치겠다고 지도(地圖)를 함에 넣어 보내었는데, 형가가 지도 밑에 감추었던 비수(匕首)로 진시황을 찌르려다가 실패하자, 진시황이 크게 노하여 연나라를 쳐서 멸하였다. <史記 刺客列傳> ❏
독항이강린[督亢餌强隣] 독항도는 곧 독항구(督亢溝)의 지도이고, 강한 이웃이란 곧 진(秦) 나라를 가리킨다. 전국 시대 연 태자 단(燕太子丹)이 자객 형가(荊軻)를 시켜 독항구를 바치겠다 하고 독항도 속에다 비수검을 감추어 가지고 진 나라에 들어가 시황(始皇)을 죽이게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史記 卷八十六 刺客列傳>
독행[獨行] 독단으로 행하다.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다.
독행[獨行] 세속에 따르지 아니하고 높은 지조를 가지고 혼자 나아감. 자신의 지조를 굳게 지키면서 세속에 휩쓸리지 않는 덕을 말한다.
독행[獨行] 예기(禮記) 유행(儒行)의 특립독행(特立獨行)에서 온 말로, 뜻과 행실이 고상하여 시류(時流)와 어울리지 않음을 뜻한다. 예기(禮記) 유행(儒行)에 “유자는 몸을 깨끗이 하고 덕(德)으로 목욕하여 말을 아뢰고도 숨기며 고요히 바로잡아서 윗사람이 알지 못하거든 그 잘못을 거칠게 들추어 간하되 또 급하게 하지 않으며, 깊은 곳에 임하지 않아도 그 행실이 높으며 조금 더 보태지 않아도 많으며, 세상이 다스려졌을 때에는 덕이 가볍게 여겨지지 않고 세상이 어지러워도 뜻이 저상되지 않으며, 같다고 하여 편들지 않고 다르다고 하여 비난하지 않으니, 그 우뚝 서고 홀로 행함이 이와 같은 것이 있습니다.[儒有澡身而浴德, 陳言而伏, 靜而正之, 上弗知也, 麤而翹之, 又不急爲也; 不臨深而爲高, 不加少而爲多; 世治不輕, 世亂不沮, 同弗與, 異弗非也. 其特立獨行有如此者.]”라고 한 데서 보이고, 한유(韓愈) 백이송(伯夷頌)에 “선비가 세속(世俗)에 구애됨이 없이 자기 소신대로 행동[特立獨行]하여 의(義)에 맞게 할뿐, 남의 시비(是非)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모두 호걸(豪傑)스러운 선비로서 도(道)를 믿음이 독실하고 자신을 앎이 분명한 자이다. 일가(一家)가 비난해도 힘써 행하고 의심하지 않는[不惑] 자가 드물며, 한 나라나 한 고을 사람들이 비난해도 힘써 행하고 의심하지 않는 자는 아마 천하에 한 사람뿐일 것이며, 온 세상이 비난해도 힘써 행하고 의심하지 않는 자는 천백 년에 한 사람뿐일 것이다.[士之特立獨行, 適於義而已. 不顧人之是非, 皆豪傑之士, 信道篤而自知明者也. 一家非之, 力行而不惑者寡矣. 至於一國一州非之, 力行而不惑者, 蓋天下一人而已矣.]”라고 한데서 보인다.
독행[篤行] 독실히 행함.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0장에 “널리 배우며, 자세히 물으며, 신중히 생각하며, 밝게 분별하며, 독실히 행하여야 한다.[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라고 하였고, 주자(朱子)의 주(註)에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별함은 선을 택하는 것으로서 지가 되니, 배워서 아는 것이요, 독실히 행함은 굳게 잡는 것으로서 인이 되니, 이롭게 여겨 행하는 것이다.[學問思辨, 所以擇善而爲知, 學而知也. 篤行, 所以固執而爲仁, 利而行也.]”라고 하였다.
독행[篤行]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에, 공자(孔子)의 제자 자장(子張)이 뜻이 행해지는 것에 대해 물었는데, 공자가 대답하기를 “말이 충신하고 행실이 독경하면 비록 오랑캐의 나라라 하더라도 행해질 수 있지만 말이 충신하지 못하고 행실이 독경하지 못하면 비록 자기 고장이라 하더라도 행해질 수 있겠는가. 서 있을 때는 충신 독경이 앞에 와 있음을 볼 수 있고 수레에 탔을 때는 충신 독경이 멍에에 기댐을 볼 수 있어야 하니, 이와 같은 뒤에야 행해질 수 있는 것이다.[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邦 行矣 言不忠信 行不篤敬 雖州里 行乎哉 立則見其參於前也 在輿則見其倚於衡也 夫然後行]”라고 하였다. <論語 衛靈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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