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돌[咄咄] 뜻밖의 일에 놀라 지르는 소리. 꾸짖거나 놀랐을 때 내는 감탄사. 혀를 차며 탄식하는 말로, ‘쯧쯧. 이런 꼴이 될 줄이야.’라는 뜻을 지닌 말인데, 매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거나 억울하게 좌천당했을 경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표현이다. 진(晉)나라 때 은호(殷浩)가 중군장군(中軍將軍)으로 있다가 후에 남의 참소를 입고 폄출(貶黜)되어 신안(信安)으로 유배되었는데, 밖으로는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기색이 없이 평상시와 같이 담소하였으나, 종일 허공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기에, 주위의 사람들이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돌돌괴사(咄咄怪事)라는 네 글자만 반복해서 쓰고 있었다 한다. <世說新語 黜免> <晉書 卷77 殷浩列傳>
돌돌괴사[咄咄怪事] 돌돌괴사(咄咄怪事)의 돌돌(咄咄)은 놀라고 괴이하게 여기는 소리이다. 진서(晉書) 권77 은호전(殷浩傳)에 “은호가 조정에서 쫓겨났으나 입으로 원망의 소리를 하지 않고 구신에게 운명을 맡겨 이야기 하고 읊조리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러니 자기 식구들도 그 쫓겨난 것에 대한 유감의 기색을 볼 수가 없었으나 다만 하루 종일 허공에다 돌돌괴사 넉자만 쓸 뿐이었다.[浩雖被黜放, 口無怨言, 九神委命, 談詠不輟. 雖家人, 不見其有流放之慼, 但終日書空, 作咄咄怪事四字而已.]”라고 하였다.
돌돌괴사[咄咄怪事] 돌돌괴사(咄咄怪事)는 뜻밖의 놀랄 만한 괴이쩍은 일이라는 뜻이다. 즉 내가 어째서 이 지경이 되었을까 후회하는 뜻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출면(黜免)에 “은중군이 유폐를 당하여 신안에 있었는데 종일 항상 허공에 글자를 썼다. 양주의 관리와 백성들이 뜻을 알고자 하여 몰래 따라 써보니, 오직 돌돌괴사(咄咄怪事) 4글자뿐이었다.[殷中軍被廢, 在信安, 終日恒書空作字. 揚州吏民尋義逐之, 竊視, 唯作‘咄咄怪事’四字而已.]”라고 하였다.
돌돌서공[咄咄書空] 뜻밖의 일에 놀라고 괴이하게 여기는 데에 비유한 말이다. 돌돌(咄咄)은 돌돌괴사(咄咄怪事)의 준말로 놀랍고 괴이한 일이라는 뜻인데, 진(晉) 나라 때 은호(殷浩)가 임금에게 파출(罷黜)되고 나서도 담영(談詠)을 평상시와 같이 하므로, 집안 식구들도 그에게서 임금에게 유방(流放)된 데 대한 유감을 찾아 볼 수 없었는데, 다만 그는 ‘종일토록 공중에다 돌돌괴사(咄咄怪事) 네 글자만을 썼다.[但終日書空, 作咄咄怪事四字而已.]’고 한다. 돌돌괴사는 놀랄 만한 괴이쩍은 일이라는 말로, 이유 없이 임금에게 유방(流放)당한 것을 탄식하는 뜻이다. <晉書 卷七十七 殷浩傳> <世說新語 黜免>
돌돌은호[咄咄殷浩] 돌돌(咄咄)은 놀라고 괴이하게 여기는 소리이다. 진(晉)의 도독(都督)이었던 은호(殷浩)는 환온(桓溫)에게 미움을 받아 관직을 박탈당하자 종일토록 공중에 ‘돌돌괴사(咄咄怪事)’ 4자를 썼다고 한다. <晉書 殷浩傳>
돌돌핍인[咄咄逼人] 스승보다도 더 뛰어나 찬탄을 금하지 못하였다는 뜻이다. 남북조 시대 때 동진(東晉)의 왕희지(王羲之)가 위 부인(衛夫人)에게 글씨를 배웠는데, 위 부인이 왕희지의 글씨를 보고 “이 사람은 정말 위압감을 느낄 만큼 대단하구나.[此子, 咄咄逼人.]”라고 하면서 감탄하였는데, 왕희지는 뒤에 천하의 명필이 되었다. <法帖釋文考異 衛夫人書>
돌돌핍인[咄咄逼人] 진(晉)나라 때 서예가인 위삭(衛鑠)에게 왕일소(王逸少)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위삭이 왕일소의 글씨가 아주 뛰어난 것을 보고는 ‘아, 이 사람의 글씨가 나를 능가한다.[此子咄咄逼人.]’이라고 하였는데, 돌돌핍인은 경탄할 정도로 기예가 뛰어나 앞사람을 초월한 것을 말한다. 왕일소(王逸少)는 동진(東晉) 사람인 왕희지(王羲之)를 가리킨다. 왕희지는 장지(張芝)의 서법을 배웠으며,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에 모두 뛰어나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서법가로 칭해진다. <晉書 卷80 王羲之列傳>
돌돌향공서[咄咄向空書] 돌돌괴사(咄咄怪事)는 놀랄 만한 괴이쩍은 일이란 뜻으로, 진(晉) 나라 때 은호(殷浩)가 조정에서 쫓겨난 뒤로는 종일토록 허공에다 ‘돌돌괴사(咄咄怪事)’ 네 글자만 쓰고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七十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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