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제[突梯] 각이 없고 원만하다. 원만하다. 모나지 않다. 초사(楚辭) 복거(卜居)에 “차라리 청렴함과 정직함을 고수하여 내 몸을 깨끗이 할까. 둥글둥글 모나게 굴지 않고, 미끈미끈 기름처럼 무두질한 가죽처럼 조심조심 몸을 사릴까.[寧廉潔正直, 以自淸乎? 將突梯滑稽 如脂如韋 以絜楹乎]”라고 한 데서 보인다.
돌제권련[突梯卷臠] 두루뭉술하고 얌전함. 돌제(突梯)는 말이나 행동이 어긋남 없이 원만한 모양이고, 권련(卷臠)은 위축되어 펴지지 못한 모양이다. 유종원(柳宗元)의 걸교문(乞巧文)에 “신의 모난 마음을 깎아내시어 둥글게 고쳐주십시오. 둔한 혀를 빼버리고 말 잘하는 혀를 주십시오. 문장은 완곡하고 부드럽게, 발걸음은 가볍게 만들어주십시오. 치아는 크고 아름답게, 눈썹은 곱게 만들어주십시오. 두루뭉술하고 얌전하여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좋다고 여기게 해주십시오.[鑿臣方心, 規以大圓. 拔去吶舌, 納以工言. 文詞婉軟, 步武輕便. 齒牙饒美, 眉睫增姸. 突梯卷臠, 爲世所賢.]”라고 한 데서 보인다.
돌제활계[突梯滑稽] 시대(時代)의 풍속(風俗)에 따름. 종시속(從時俗). 초사(楚辭) 복거(卜居)에 “차리리 초연히 멀리 떠나가, 참된 나의 본성 보존을 할까. 아니면 아양 떨고 안색 살피며, 선웃음 치면서 궁인(宮人)들에게 굽신댈까. 차라리 결백하고 곧은 자세로 내 몸 하나라도 깨끗이 할까. 아니면 둥글둥글 모나게 굴지 않으면서, 미끈미끈 기름처럼 무두질한 가죽처럼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몸을 사릴까.[寧超然高擧 以保眞乎 將哫訾栗斯 喔咿儒兒 以事婦人乎 寧廉潔正直 以自淸乎 將突梯滑稽 如脂如韋 以絜楹乎]”라고 하였다.
돌지후[突地吼] 당(唐)나라 내준신(來俊臣)·색원례(索元禮) 무리가 만든 형구, 형벌의 종류이다. 신당서(新唐書) 권209 혹리열전(酷吏列傳) 내준신(來俊臣)에 “커다란 형틀을 만들어 번호를 붙였으니, 첫째가 정백맥(定百脈), 둘째가 천부득(喘不得), 셋째가 돌지후(突地吼), 넷째가 착즉신(著即臣), 다섯째가 실혼담(失魂膽), 여섯째가 실동반(實同反), 일곱째 반시실(反是實), 여덟째가 사저수(死豬愁), 아홉째가 구즉사(求即死), 열째가 구파가(求破家)이다. ……형틀에 묶인 자는 땅에서 뒹굴다 곧 숨이 끊어진다.[又作大枷各爲號 一定百脈 二喘不得 三突地吼 四著卽臣 五失魂膽 六實同反 七反是實 八死豬愁 九求即死 十求破家 …… 被枷者宛轉地上 少選而絶]”라는 말이 나온다. 내준신(來俊臣)과 색원례(索元禮)는 당(唐)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 때 악명이 높던 형관(刑官)들이다. 가혹한 고문 기술을 만든 자들로 유명하다.
돌차간[咄嗟間] 눈 깜짝할 사이. 금곡(金谷)은 진(晉)나라 부호(富豪) 석숭(石崇)의 원명(園名)인데, 석숭이 “손님을 위해 팥죽을 대접하면서 한 번 호흡하는 사이에 마련하게 하였다.[爲客作豆粥 咄嗟便辦]”는 기록이 진서(晉書) 권33 석숭열전(石崇列傳)에 보인다.
돌탄[咄嘆] 혀를 차며 탄식(歎息)하는 것을 이른다.
돌탄막급[咄嘆莫及] 아무리 탄식하여도 어쩔 수가 없음. 혀를 차면서 탄식을 해도 별도리가 없다는 말이다.
돌홀[突忽] 홀(忽)은 정 장공(鄭莊公)의 태자로서, 모친은 등만(鄧曼)이다. 장공이 죽자 채중(祭仲)의 추대를 받고 임금이 되니, 이 사람이 소공(昭公)이다. 돌(突)은 홀의 아우로서, 모친은 옹길(雍佶)인데, 소공의 자리를 뺏고 즉위하니 이 사람이 여공(厲公)이다. 소공은 위(衛)나라로 망명했다가 채중의 도움으로 귀국한 뒤에 사냥터에서 고거미(高渠彌)에게 사살되었고, 여공은 채중을 죽이려다 실패한 뒤에 역읍(櫟邑)으로 피신해서 17년 동안 있다가 도성으로 돌아와 복위하였다. <史記 卷42 鄭世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