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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가[東柯], 동가[東家], 동가[東嘉], 동가강[佟家江], 동가구[東家丘]


동[動]  항상(恒常). 걸핏하면 혹은 어떤 일이 생기면 그때마다.

동[桐]  동궁을 말하며 여러 설이 있다. 사기집해(史記集解)에는 탕임금이 묻힌 곳으로 제음(濟陰)의 박현(亳縣)으로 지금의 산동성 조현(曹縣) 동쪽을 말한다고 했으며, 사기정의(史記正義)에는 하남성 언사시(偃師市) 서쪽 등 이외에 몇 가지 설이 더 있다.

동[峒]  송대(宋代)에 변경의 소수민족 지역에 설치했던 기미주(羈縻州)의 예속 행정단위로 주(州)와 현(縣) 다음으로 가장 작은 단위이다.

동가[東柯]  동가(東柯)는 중국 진주(秦州) 동남쪽 50리 지점에 있다는 골짜기 이름인데, 두보(杜甫)가 약초를 캐며 노년을 보내고 싶다면서[採藥吾將老] 읊은, 진주잡시20수(秦州雜詩二十首) 기16(其十六)에 “동가의 절벽과 골짜기 참으로 좋아, 뭇 봉우리들과 같지 않다네. 지는 해 쌍쌍이 나는 새 부르고, 맑은 하늘에 조각구름 말려 있네.[東柯好崖谷, 不與衆峯羣. 落日邀雙鳥, 晴天卷片雲.]”라고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7 秦州雜詩>

동가[東家]  동쪽 집. 두보(杜甫)의 시 핍측행증필사요(偪側行贈畢四曜)에 “동쪽 집 절뚝발 당나귀를 빌려 주마 했으나, 길이 미끄러워 감히 타고 조참을 못 가겠네.[東家蹇驢許借我 泥滑不敢騎朝天]”라고 하였다.

동가[東嘉]  원(元)나라 경학자(經學者) 사백선(史伯璿)으로, 자는 문기(文璣)이며, 온주(溫州) 평양(平陽 지금의 절강성) 사람이다. 평생 은거하며 경서 연구에 침잠했으며, 주자의 학문을 종주로 삼았다. 저서로는 사서관규(四書管窺), 관규외편(管窺外篇) 등이 있다.

동가[董賈]  한대(漢代)의 유명한 학자이자 정치가인 동중서(董仲舒)와 가의(賈誼)를 가리킨다.

동가강[佟家江]  만주 요녕성(遼寧省) 임강현(臨江縣) 서북에 있는 삼차자(三岔子)에서 발원하여 압록강으로 흘러들어간다. 한대(漢代)에는 비류수(沸流水)로 불렸으며, 명말(明末)에 와서 동성(佟姓)이 이 유역에 많이 살았기 때문에 동가강(佟家江)으로 불리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파저강(婆猪江)으로 불렀다. 오늘날에는 혼하(渾河), 혼강(混江)등으로 불려진다. 기타 문헌에 동가강(佟佳江)으로 나오기도 한다.

동가구[東家丘]  동쪽 집의 공구(孔丘). 공자(孔子)가 성인인 줄을 모르는 노(魯)나라 사람이 “우리 동쪽 집에 사는 구라는 사람[我東家丘]”이라고 마구 불렀다는 고사가 있다. 안씨가훈(顔氏家訓) 모현(慕賢)에 “장단점을 비교해보고 잘하고 못하는 것을 꼼꼼히 따져보면, 때로는 먼 데 있는 사람이 가까이 있는 사람만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노(魯)나라 사람들이 공자(孔子)를 일컬어 ‘동쪽 집에 사는 구(丘)’라 낮추어 불렀고, 옛날 우(虞)나라의 궁지기(宮之奇)는 어려서 군주와 함께 자랐다고 군주가 그를 얕보고서 그의 간언(諫言)을 받아들이지 않아 망국(亡國)에 이르렀으니,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校其長短, 覈其精麤, 或彼不能如此矣. 所以魯人謂孔子爲東家丘, 昔虞國宮之奇, 少長於君, 君狎之, 不納其諫, 以至亡國, 不可不留心也.]”라고 하였다.

동가구[東家丘]  동가구는 동쪽 집의 공구(孔丘)라는 뜻으로, 즉 노(魯)나라 사람으로서 공자(孔子)의 서쪽 이웃에 살던 한 어리석은 자가 공자가 성인인 줄을 모르고 “저 동쪽 집의 공구를 내가 안다.[彼東家丘者, 吾知之矣.]”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孔子家語 本姓解·傳習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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