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각[東閣] 동각(東閣)은 동쪽으로 난 작은 문[小門]을 말한다. 한 무제(漢武帝) 때 공손홍(公孫弘)이 승상이 되고 나서는 객관(客館)을 짓고 객관의 동쪽으로 작은 문을 열어 놓고 현사(賢士)들을 초빙하였다. 당시 한 무제는 공리(功利)와 정벌에 치우친 패도적인 성향을 드러내었고, 공손홍은 이러한 한 무제의 취향에 적극적으로 부응해서, 현인들을 초빙하고 상의하여 구법(舊法)에 인습하는 것이 아닌 적극적이고 개혁적인 대책을 올렸다. <漢書 卷58 公孫弘傳> 전하여 재상이 현사를 초빙하는 곳을 이른다.
동각[東閣] 동각(東閣)은 동쪽으로 열린 쪽문이라는 뜻으로, 재상이 현자(賢者)를 초치(招致)하는 것을 이른다. 한(漢)나라 공손홍(公孫弘)이 재상이 된 뒤에 “객관을 세우고 동쪽 합문을 열어서 어진 사람을 맞이하였다.[起客館, 開東閤以延賢人.]”라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동합(東閤)이라고도 한다. <資治通鑑 卷19 漢紀11 武帝 中之上 元狩 元年>
동각[東閣] 동각은 지방 수령의 관아(官衙)를 뜻한다. 남조(南朝) 양(梁)나라 하손(何遜)이 건안왕(建安王)의 수조관(水曹官)으로 양주(楊州)에 있을 때 관청 뜰에 매화 한 그루가 있어서 매일같이 그 나무 아래서 시를 읊곤 하였다. 뒤에 낙양(洛陽)에 돌아갔다가 그 매화가 그리워서 다시 양주로 발령해 주길 청하여 양주에 당도하니 매화가 한창 피었기에 매화나무 아래서 종일토록 서성거렸다. 두보(杜甫)의 시 화배적등촉주동정송객봉조매상억견기(和裴迪登蜀州東亭送客逢早梅相憶見記)에 “동각의 관매가 시흥을 움직이니, 도리어 하손이 양주에 있을 때 같구나.[東閣官梅動詩興 還如何遜在楊州]”라고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9>
동각[東閣] 후한(後漢) 때 동평왕(東平王)이 어진 이를 부르기 위해 설치한 동쪽의 문이다.
동각[桐角] 오동각(梧桐角)의 준말이다. 오동나무 잎을 말아서 뿔 모양으로 만든 것인데, 뿔피리처럼 불면 소리가 난다고 한다. 원(元)나라 왕정(王禎)의 농서(農書) 13권에 “오동각은 제동(淛東) 지방 농가의 아이들이 봄에 오동나무 잎을 말아서 뿔처럼 만들어 부는 것으로 그 소리가 들판에 두루 울려 퍼진다. 예전 사람의 시에 ‘마을 남쪽 마을 북쪽엔 오동각 소리요, 산 앞 산 뒤에는 백채화가 피었네.’라는 구절이 있으니, 이러한 광경을 묘사한 것이다.[梧桐角, 淛東諸鄉農家兒童, 以春月捲梧桐為角吹之, 聲遍田野. 前人有‘村南村北梧桐角, 山前山後白菜花’之句, 狀時景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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