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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각로[東閣老], 동각서곤[東閣西崑], 동각심매[東閣尋梅], 동각탐매[東閣探梅]


동각로[東閣老]  동각(東閣)의 노인은 한(漢)나라 공손홍(公孫弘)을 이르는데, 공손홍이 승상이 되어 동각을 지어 어진 선비들을 맞아들였던 데서 나온 말이다. 세성(歲星)은 동방삭을 말한다. 동방삭이 죽은 뒤에 무제(武帝)가 태왕공을 불러 “모든 별이 다 갖춰져 있느냐?” 하니, 태왕공이 대답하기를 “다른 별들은 그대로 있으나 세성(歲星)은 18년 동안 보이지 않다가 이제야 다시 보입니다.” 하자, 무제가 하늘을 쳐다보고 탄식하기를 “동방삭이 살아서 18년 동안을 내 곁에 있었는데, 그가 바로 세성이었음을 내가 몰랐구나.”라고 하였다고 한다. <太平廣記>

동각서곤[東閣西崑]  동각은 학사원(學士院)의 별칭이고, 서곤(西崑)은 서방의 곤륜군옥산(崑崙群玉山)으로 고대 제왕의 장서각(藏書閣)이 있던 곳이다.

동각심매[東閣尋梅]  양(梁) 나라 때 시인 하손(何遜)이 일찍이 양주 자사(揚州刺史)의 기실 참군(記室參軍)으로 있을 적에 관아(官衙)의 매화가 활짝 핀 것을 보고 영조매(詠早梅)라는 제목의 시를 지었었는데, 두보(杜甫)의 화배적등촉주동정송객봉조매상억견기(和裴迪登蜀州東亭送客逢早梅相憶見寄) 시에서 하손의 고사를 끌어대어 “동각의 관매가 시흥을 발동시키니, 도리어 하손이 양주에 있을 때 같구나.[東閣官梅動詩興 還如何遜在揚州]”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동각탐매[東閣探梅]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하손(何遜)이 건안왕(建安王)의 수조관(水曹官)으로 양주(楊州)에 있을 때 관청 뜰에 매화 한 그루가 있어서 매일같이 그 밑에서 시를 읊곤 하였다. 그 후 낙양(洛陽)에 돌아갔다가 그 매화가 그리워서 다시 양주로 발령해 주길 청하여 양주에 당도하니 매화가 한창 피었기에 매화나무 아래서 종일토록 서성거렸다.

동각흥[東閣興]  양(梁) 나라 하손(何遜)이 동각(東閣)을 개방하고 문인(門人)을 초빙하여 매화를 감상했던 고사를 말한다.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하손(何遜)이 건안왕(建安王)의 수조관(水曹官)으로 양주(楊州)에 있을 때 관청 뜰에 매화 한 그루가 있어서 매일같이 그 밑에서 시를 읊곤 하였다. 그 후 낙양(洛陽)에 돌아갔다가 그 매화가 그리워서 다시 양주로 발령해 주길 청하여 양주에 당도하니 매화가 한창 피었기에 매화나무 아래서 종일토록 서성거렸다. 두보(杜甫)의 시 화배적등촉주동정송객봉조매상억견기(和裴迪登蜀州東亭送客逢早梅相憶見寄)에 “동각의 관매가 시흥을 움직이니, 도리어 하손이 양주에 있을 때 같구나.[東閣官梅動詩興 還如何遜在楊州]”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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