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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간[銅竿], 동갈[董褐], 동감[同龕], 동강[東岡], 동강[潼江], 동강[桐江]


동간[銅竿]  동으로 만든 기둥을 말한다.

동간산[同看山]  함께 산을 유람하다. 함께 산을 보다. 유종원(柳宗元)이 유주 자사(柳州刺史)로 좌천되고 지은 여호초상인동간산기경화친고(與浩初上人同看山寄京華親故: 호초상인과 산을 바라보며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부치다)에 “바닷가의 뾰족한 산들이 칼날과 흡사하여, 가을이면 곳곳마다 시름 창자를 베는구나. 어떻게 하면 이 몸을 천억 개로 변화하여, 흩어져 산봉우리마다 올라가 고향을 바라볼 수 있을까.[海畔尖山似劍鋩, 秋來處處割愁腸. 若爲化得身千億, 散上峯頭望故鄕.]”라고 하였다. <柳河東集 卷42>

동갈[董褐]  진(晉)나라의 대부(大夫) 사마 연(司馬演)이다.

동감[同龕]  같은 방에 함께 있는 것을 가리킨다. 龕(감)은 불상이나 신주를 모신 작은 전각을 가리킨다. 당(唐)나라 초기의 명신(名臣)이며 명필(名筆)이기도 했던 저수량(褚遂良)의 서첩(書帖)에 “들으니 오래전부터 속세를 떠나 미륵과 감실을 함께하면서, 하루 한 번 소식(素食)을 먹고 여덟 시간 좌선하고 불경을 읽는다고 합니다.[聞久棄塵滓, 與彌勒同龕, 一食淸齋, 八時禪誦.]”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본디 승려(僧侶)와 속인(俗人)이 함께 거처하는 것을 뜻한다. 참고로, 소식(蘇軾)의 시 자금산방선지초산(自金山放船至焦山)에 “객지생활이 오래 되어 고향은 이미 잊었고, 오로지 미륵만이 동거인이라 하네. 종이 장막 따뜻하여 곤한 잠에 빠지고, 산나물은 감미로워 배불리 먹어도 물리지 않네.[自言久客忘鄕井, 只有彌勒爲同龕. 困眠得就紙帳暖, 飽食未厭山蔬甘.]”라고 하였다.

동강[東岡]  동쪽 산비탈이라는 뜻으로, 벼슬에 나가지 않고 물러나 있는 곳을 뜻한다.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진충(陳忠)이 여남(汝南) 사람 주섭(周爕)과 남양(南陽) 사람 풍량(馮良)은 학문이 깊고 행실이 순수하면서 은거하여 벼슬하지 않는다고 천거하니, 황제는 새끼 양과 폐백을 가지고 이들을 초빙하였다. 주섭의 종족들이 그에게 권하기를 ‘덕(德)을 닦고 행실을 세움은 나라를 위해서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홀로 동강(東岡)의 비탈밭을 지키는가?’라고 하니, 주섭이 대답하기를 ‘도(道)를 닦는 자는 때를 기다려 동(動)하니, 동(動)하여 때에 맞지 않으면 어찌 형통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주섭은 풍량과 함께 모두 스스로 수레를 타고 가까운 현(縣)에 이르러 병을 칭탁하고 돌아갔다.[陳忠薦汝南周燮, 南陽馮良學行深純, 隱居不仕, 名重於世, 帝以玄纁羔幣聘之. 燮宗族更勸之曰:‘夫脩德立行,所以為國,君獨何為守東岡之陂乎?’ 燮曰:‘夫脩道者度其時而動,動而不時,焉得亨乎!’ 與良皆自載至近縣, 稱病而還.]”라고 한 데서 보인다.

동강[東崗]  동쪽 산비탈. 동강(東崗)의 원래 의미는 양지바른 산언덕을 가리키는 말인데, 주섭(周燮)의 고사에서 유래하여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草野)에 묻혀 살려는 뜻을 가리키게 되었다. 후한(後漢)의 은사(隱士)인 주섭(周燮)이 효렴(孝廉)과 현량방정(賢良方正)으로 천거를 받아 천자가 특별히 불렀는데도 질병으로 사양하고 나가지 않자 종족이 나아가기를 권하여 “덕을 닦고 수행하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함이다. 선대(先代) 이래로 작훈과 은총을 계속 받았는데, 그대만 유독 어찌하여 동강의 비탈을 지키려 하는가?[夫修德立行, 所以爲國. 自先世以來, 勳龍相承, 君獨何爲守東岡之陂乎?]”라고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後漢書 卷53 周黃徐姜申屠列傳>

동강[東岡]  동강은 선인(先人)의 초려(草廬)가 있는 곳으로 곧 자신의 고향을 의미하는데, 은둔한 채 출사하지 않은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권53 주섭열전(周燮列傳)에, 후한(後漢) 안제(安帝)가 효렴(孝廉)으로 천거된 주섭(周燮)을 부르자 그 종족이 그에게 나아가기를 권유하며 “덕을 닦아 수행하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함이다. 선세(先世) 이래로 작훈과 은총을 계속 받았는데, 그대만 유독 어찌하여 동쪽 언덕의 비탈 밭을 지키려 하는가.[夫修德立行 所以爲國 自先世以來 勳龍相承 君獨何爲守東岡之陂乎]”라고 한 데서 나왔다. <後漢書 卷53 周燮列傳>

동강[東岡]  동강은 진(晉)나라 사안(謝安)이 젊은 시절에 은거한 동산(東山)을 말한다. 절강성(浙江省) 상우현(上虞縣)의 남서쪽에 있는데 경치가 수려하기로 유명하였다. <晉書 卷79 謝安傳>

동강[潼江]  동천부(潼川府)에 있는 장강(長江) 수계에 속하는 부강(涪江)의 지류로 사천(四川) 평무(平武)에서 발원하여 재동(梓橦)과 염정(鹽亭)을 거쳐 사홍(射洪)에서 부강(涪江)으로 들어가는데, 이 일대가 당나라 때 동천절도사(東川節度使)의 관할지였다.

동강[桐江]  전당강(錢塘江)이 흘러가는 동려현(桐廬縣) 일대의 유역. 전당강은 절강(折江) 또는 지강(之江)이라고도 하며 절강성(浙江省)에서 가장 큰 강이다. 가장 이른 기록으로는 산해경(山海經)에 그 이름이 나온다.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고사(高士)인 엄광(嚴光)은 어린 시절의 벗이었던 광무제가 즉위하자 성명을 바꾸고 숨어 살았는데, 광무제가 불러서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제수하니 사양하고 부춘산(富春山)에 은거하여 농사짓고 그 부근 동강(桐江)에서 낚시하면서 여생을 마쳤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동강[桐江]  절강성(浙江省) 동려현(桐廬縣)의 부춘산(富春山) 아래 있던 강 이름인데, 후한 광무제(光武帝)의 소년 시절 친구이기도 한 은사 엄광(嚴光)이 광무제(光武帝)가 등극한 이후로는 광무제의 간곡한 부름을 끝내 거절하고 이곳에서 낚시질을 하며 종신토록 은거했었다. 그가 한번은 광무제의 간청에 의해 대궐에 들어가 광무제와 함께 옛일을 이야기하고 같이 누워 자면서 광무제의 배 위에 발을 얹기까지 했는데, 이튿날 태사(太史)가 객성(客星)이 어좌(御座)를 매우 가까이 범했다고 아뢰자, 광무제가 웃으면서 이르기를 “나의 친구 엄자릉(嚴子陵)과 함께 누워 있었다.[朕與故人嚴子陵共臥耳]”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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