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일사[桐江一絲] 예로부터 “동강의 낚싯줄 하나가 한나라의 구정을 붙들어 매었다.[桐江一絲繫漢九鼎]”라는 말이 전해 온다. 후한 광무제(後漢光武帝)의 절친한 친구인 엄광(嚴光)이 높은 벼슬을 주려는 광무제의 호의를 거절하고 부춘산(富春山)에 들어가 숨어 살며 동강에서 낚시로 소일한 고사가 유명한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선비들의 기개를 높여 주어 후한의 국운을 유지하게 했다는 말이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嚴光> 구정(九鼎)은 하우씨(夏禹氏)가 구주(九州)의 쇠붙이를 모아 주조했다는 솥을 말하는데, 하(夏)·은(殷)·주(周) 시대를 전해 내려오면서 천하를 차지한 제왕 혹은 왕조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보배로 여겨져 왔다. <史記 卷12 武帝紀>
동강일사[桐江一絲] 은거하는 선비 한 명의 절개가 온 나라 선비의 마음을 고무시켜 나라를 편안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동강의 낚싯줄 하나가 한나라의 구정을 붙들어 매었다.[桐江一絲, 繫漢九鼎.]”라는 말이 전해 오는데,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어린 시절 학우(學友)였던 은사(隱士) 엄광(嚴光)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광무제가 등극(登極)한 뒤에 엄광을 불러 관직에 등용하려고 해도 끝내 응하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에 들어가 숨어 살며 동강에서 낚시질로 소일하며 여생을 마쳤는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선비들의 기개를 높여 주어 후한의 국운을 유지하게 하였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嚴光>
동강주[桐江洲] 한(漢) 나라 처사 엄자릉(嚴子陵)이 낚시질하던 동강(桐江)을 이른다.
동강지피[東岡之陂] 동쪽 산비탈로, 벼슬에 나가지 않고 물러나 있는 곳을 뜻한다. 후한서(後漢書) 주섭전(周燮傳)에 은사(隱士)인 주섭(周燮)을 조정에서 누차 불렀으나 그가 이에 응하지 않자, 그의 종족들이 그에게 “선대로부터 훈총(勳寵)이 계속 이어져 왔는데 그대는 어째서 동강의 비탈만 지키는가?[自先世以來, 勳寵相承, 君獨何爲守東岡之陂乎?]”라고 말한 데서 온 것이다. 동강은 주섭의 선인(先人)이 초가집을 지어놓은 동쪽 산등성이이다.
동강지피[東岡之陂] 벼슬에 나가지 않고 물러난다는 뜻이다. 후한(後漢)의 주섭(周燮)이 효렴(孝廉)과 현량방정(賢良方正)으로 천거를 받아 천자가 특별히 불렀는데도 질병으로 사양하고 나가지 않자 종족이 나아가기를 권하여 “선대부터 훈총이 줄을 이었는데 그대만 어찌 유독 동강의 비탈을 지키는가?[自先世以來, 勳寵相承, 君獨何爲守東岡之陂乎?]”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後漢書 卷83 周燮列傳>
동강칠리탄[桐江七里灘] 전당강(錢塘江)이 동려현(桐廬縣)을 지나는 부분의 이름이다. 후한(後漢)의 은사(隱士)인 엄광(嚴光)은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와 어려서부터 함께 공부한 사이였는데 유수가 황제가 되자 성명을 바꾸고 숨어서 살았다. 광무제가 불러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제수하였으나 이를 사양하고 부춘산(富春山)의 칠리탄(七里灘)에 은거하여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살았는데, 광무제는 이것을 허락하였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嚴光>
동강흥일반[桐江興一般] 은자(隱者)로서 소일 삼아 낚시한다는 뜻이다. 엄광(嚴光)은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소싯적 친구로서, 높은 벼슬을 주려는 광무제의 호의를 거절하고 부춘산(富春山)에 들어가 숨어 살며 양갖옷[羊裘]을 걸치고 동강(桐江)에서 낚시로 소일했다고 한다. <後漢書 卷83 嚴光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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