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同庚] 동경(同庚)은 같은 때 과거에 급제하여 방목(榜目)에 같이 오른 사람을 이른다.
동경[同庚] 같은 해에 태어남. 동경은 같은 나이라는 뜻으로 흔히 동갑(同甲)으로 쓰인다. 청나라 고장사(顧張思)가 지은 토풍록(土風錄) 권11에 “나이를 경이라 하니, 사람의 나이를 물을 때 존경이라고 하며 나이가 같은 것을 동경이라 한다.[年齒曰庚 問人年曰尊庚 同年歲曰同庚]”라고 보인다.
동경[東京] 경주(慶州)의 이칭으로, 고려 때 서경(西京)인 평양(平壤), 남경(南京)인 한양(漢陽)과 함께 3경으로 불렸다.
동경[東京] 금나라 오경(五京)의 하나로 지금의 중국 요령성 요양(遼陽). 금나라는 요나라를 본떠 중경대흥부(中京大興府), 남경개봉부(南京開封府), 북경대정부(北京大定府), 동경요양부(東京遼陽府), 서경대동부(西京大同府) 등 오경을 두었다. 이 가운데 도성은 시기에 따라 상경회령부(1115~1153), 중경대흥부(1153~1214), 남경개봉부(1214~1234)에 각각 두었다.
동경[東京] 낙양(洛陽). 동경(東京)은 후한(後漢)을 이른다. 전한(前漢)은 서쪽에 있는 장안(長安)에 도읍하였으므로 서경 또는 서한(西漢)이라 칭하고, 후한은 동쪽에 있는 낙양(洛陽)에 도읍하였으므로 동경(東京) 또는 동한(東漢)이라 칭한다.
동경[東京] 동한(東漢), 즉 후한(後漢)의 별칭이다. 장안(長安)은 전한(前漢)의 도읍이고 낙양(洛陽)은 후한(後漢)의 도읍이다. 천도한 이후로 장안을 서경(西京)이라 부르고 낙양을 동경(東京)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 것이다.
동경[東卿] 섭지선(葉志詵)으로, 동경(東卿)은 그의 자이고, 호는 수옹(遂翁)·담옹(淡翁)이다. 관직은 병부무선사낭중(兵部武選司郎中)에 이르렀다. 청나라의 대학자 옹방강(翁方綱)의 제자이자 사위로, 김정희(金正喜)와도 교분이 깊었다. 금석학에 조예가 깊었다. 저서로 간학재문집(簡學齋文集), 평안관시문집(平安館詩文集), 영고록(詠古錄), 금산정고(金山鼎考), 신농본초전(神農本草傳) 등이 있다.
동경[董慶] 위(魏)나라의 중신(重臣)이다.
동경[董京] 자는 위련(威輦)으로, 낙양(洛陽)에서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니며 시를 읊다가 백사(白社)에서 유숙하였고, 저자에서 해진 천과 솜을 구걸하여 그것을 꿰매 입고 다녔다. 손초(孫楚)가 저작랑(著作郎)이 되어 “지금은 요순시대와 같은데, 어찌 도를 간직하고서 나라를 어지럽게 버려두는가.[今堯舜之世, 胡為懐道迷邦.]”라고 하며 출사를 권유했지만 끝내 거절했다고 한다. <晉書 卷94 隱逸列傳 董京>
동경[東京] 지금의 북베트남에 있던 교지국(交趾國)의 도부(都府)이다. 본디 형제의 나라였는데, 자손에 이르러 서로 다투어서 교지와 동경이 두 나라로 나뉘었다고 한다.
동경계[同庚契] 나이가 같은 사람끼리 친목을 꾀하기 위하여 맺은 계(契)이다. 동경(同庚)은 동갑(同甲)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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