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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관고공기[冬官考工記], 동관곤월[東觀袞鉞], 동관귀래[童冠歸來], 동관단묵[東觀丹墨]


동관고공기[冬官考工記]  동관고공기(冬官考工記)는 주례(周禮)의 한 부분으로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 주례동관고공기(周禮冬官考工記)라고도 하는데 각종 관영 수공업 규범과 제조방법을 수록한 문헌이다. 주례(周禮)의 체재는 천지춘하추동(天地春夏秋冬)의 육상(六象)에 따라 직제를 크게 천관(天官)·지관(地官)·춘관(春官)·하관(夏官)·추관(秋官)·동관(冬官)의 여섯으로 나누고 그 아래에 각 관직과 직무를 서술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전체가 천관총재(天官冢宰)·지관사도(地官司徒)·춘관종백(春官宗伯)·하관사마(夏官司馬)·추관사구(秋官司寇)·동관고공기(冬官考工記)의 여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공기(考工記)는 유실된 동관사공(冬官司空) 대신 한대(漢代)에 보충해 넣은 것이다. 각 편마다 첫머리에 경문(經文)을 두어 해당 관직과 그 관장하는 직무의 요점을 총괄 서술, 그 아래에 관직과 직무를 등급에 따라 차례로 배열하였다.

동관곤월[東觀袞鉞]  동관(東觀)은 동한(東漢) 때 낙양(洛陽)의 남궁(南宮) 안에 있던 관의 이름으로, 반고(班固) 등이 이곳에서 동관한기(東觀漢記)를 수찬하였으므로 후대에는 국사(國史)를 수찬하는 곳을 뜻하게 되었다. 곤월(袞鉞)은 공자(孔子)가 실제로 정치를 할 수 없게 되자 춘추(春秋)를 지었는데, 춘추에서 한 글자의 포폄(褒貶)을 매우 중히 여겨, 고어(古語)에 “화곤보다 영광스러운 것은 곧 한 글자의 포양이요, 부월보다 엄한 것은 바로 한 글자의 폄척이다.[榮於華衮, 乃一字之褒. 嚴於斧鉞, 乃一字之貶.]”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동관귀래[童冠歸來]  성인의 기상을 나타낸 말이다. 논어(論語) 선진(先進)에, 공자(孔子)가 제자들의 소회를 물었더니, 증점(曾點)이 자신의 포부를 말하면서 “늦봄에 봄 옷이 만들어지면 관을 쓴 어른 오륙 명과 동자 육칠 명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쐰 뒤에 노래를 부르면서 돌아오겠다.[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고 하자, 공자가 감탄을 하면서 “나는 점을 허여하노라.[吾與點也]”라고 하였던 고사가 있다.

동관기[彤管記]  동관의 기록. 여사(女史)가 붉은 대롱의 붓을 잡고 후비(后妃)의 언행을 하나하나 기록한 것을 이른다.

동관단묵[東觀丹墨]  동관(東觀)은 후한(後漢) 때 낙양(洛陽)의 남궁(南宮) 안에 문서와 전적을 보관하고 교서(校書)와 역사 저술에 관련된 사람들이 종사했던 곳을 가리킨다. 단묵(丹墨)은 붉은 먹과 검은 먹을 뜻하는 것으로 글 쓰는 것과 교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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