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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궁가곡[東宮歌鵠], 동궁구사[東宮舊事], 동궁구인[東宮舊人], 동궁동시[彤弓彤矢]


동궁가곡[東宮歌鵠]  한 고조(漢高祖)가 태자(太子)를 폐위(廢位)하고 척부인(戚夫人) 소생인 조왕(趙王) 여의(如意)를 세우려 하자, 장량(張良)이 계책을 내어 고조가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상산사호(商山四皓)를 불러들이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폐백과 예를 갖추고 상산사호를 초빙한 다음 고조가 연회를 베푸는 자리에, 그들로 하여금 태자를 시위(侍衞)하게 하였다. 고조가 그들이 상산사호임을 알고는 매우 놀라 태자를 폐위하려던 생각을 바꾼 다음 척부인으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고 초가(楚歌)를 부르기를 “큰 고니가 높이 낢이여, 단번에 천리를 가도다. 날개[羽翼]가 이미 자람이여, 사해를 가로지르도다. 사해를 가로지르나니, 또한 어찌하리요. 아무리 주살이 있은들 오히려 어디에 쓰겠는가.[鴻鵠高飛 一擧千里 羽翼以就 橫絶四海 橫絶四海 又可奈何 雖有矰繳 尙安所施]”라고 하였다. <漢書 卷40 張良傳> <史記 卷55 留侯世家>

동궁구사[東宮舊事]  당서(唐書) 경적지(經籍志)에 의하면 “동궁구사는 11권으로 진(晉)나라 장창(張敝)이 지었다.[東宮舊事, 十卷, 張敝撰.]”라고 하였다. 진(晉)나라 태자(太子)의 의례(儀禮)와 풍속(風俗)을 기록한 것이지만 오래전에 망실(亡失)되었고 지금 도원의(陶元儀)와 황석(黃奭)의 집본(輯本)이 전한다.

동궁구인[東宮舊人]  동궁(東宮)은 세자(世子) 또는 태자(太子)의 궁(宮)을 이르고, 구인(舊人)은 선대부터의 오랜 신하를 이른다. 송 신종(宋神宗)이 잠저(潛邸)에 있을 적에 영종(英宗)이 한 위공(韓魏公: 한기韓琦)에게 명하여 궁료(宮僚)를 뽑게 하였는데, 왕도(王陶)와 한유(韓維) 등을 등용하였다. 역대통감집람(歷代通鑑輯覽) 77권 송 신종황제(宋神宗皇帝)에 “문언박(文彦博)이 조정을 떠나겠다고 청하였다. 신종이 이르기를 ‘추밀원(樞密院)의 일은 번극(繁劇)하니, 마땅히 한유를 좌경(左卿)에 제수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튿날 한유가 전중(殿中)에서 일을 상주하는데, 자기의 진언(進言)을 들어주지 않는다 하여 극력 외군(外郡)을 청하니, 신종이 이르기를 ‘경은 동궁(東宮) 때의 구인(舊人)이니, 마땅히 떠나지 않고 머물면서 정사를 보좌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한유가 아뢰기를 ‘신의 진언을 행하여 주시는 것이 부귀보다 낫습니다. 구은(舊恩)으로 말미암아 승진하는 것은 참으로 신의 소원이 아닙니다.’라고 하고, 이에 밖으로 나가서 양주(襄州)를 맡았다”라고 한 데서 보인다.

동궁동시[彤弓彤矢]  붉게 칠한 활과 붉은색의 화살로, 옛날에 공신에게 정벌을 명할 때 하사하였던 것이다. 서경(書經) 주서(周書) 문후지명(文侯之命)에 “숙부(叔父) 의화(義和)여! 그대는 돌아가서 백성들을 보살펴, 그대의 나라를 평안히 하시오. 이제 그대에게 검은 기장술 한 통과, 붉은 활 한 개와, 붉은 화살 백대와, 검은 활 한 개와, 검은 화살 백 대와, 말 네 필을 내리는 바이오.[父義和! 其歸視爾師, 寧爾邦. 用賚爾秬一鬯卣, 彤弓一, 彤矢百, 盧弓一, 盧矢百, 馬四匹.]”라고 하였는데, 공안국(孔安國)의 전(傳)에 “제후가 큰 공로를 세우면 활과 화살을 하사한 다음에 정벌을 관장하도록 한다.[諸侯有大功, 賜弓矢, 然後專征伐.]”라고 하였다.

동궁동시[彤弓彤矢]  동궁(彤弓)은 붉은 활이고, 동시(彤矢)는 붉은 화살이다. 주(周)나라 때에 제후가 전공(戰功)이 있으면, 천자가 동궁을 하사하고 보답하는 연회를 열어 주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문공(文公) 4년에 “제후들이 왕이 통한하게 여기는 상대를 대적하여 공(功)을 세우면 왕이 동궁 1개, 동시 100개, 검은 궁시 1000개를 하사하여 공에 보답하는 연회임을 밝힌다.[諸侯敵王所愾而獻其功 王於是乎賜之彤弓一彤矢百玈弓矢千 以覺報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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