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동궁로궁[彤弓玈弓], 동궁서광[東宮西廣], 동궁우익[東宮羽翼], 동궁훈업[彤弓勳業]


동궁로궁[彤弓玈弓]  동궁(彤弓)은 적궁(赤弓)이고, 노궁(玈弓)는 흑궁(黑弓)이다. 활 한 자루에 살 백 대씩을 주니, 살이 천 대면 활은 열 자루이다. 제후(諸侯)가 궁시(弓矢)를 하사(下賜)받은 뒤에야 정벌(征伐)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참고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문공(文公) 4년에 “제후들이 왕이 통한하게 여기는 상대를 대적하여 공(功)을 세우면 왕이 동궁 1개, 동시 100개, 검은 궁시 1000개를 하사하여 공에 보답하는 연회임을 밝힌다.[諸侯敵王所愾而獻其功 王於是乎賜之彤弓一彤矢百玈弓矢千 以覺報宴]”라고 하였다.

동궁산[洞宮山]  복건성(福建省) 정화현(政和縣)의 동남쪽에 있는 산으로, 구련봉(九蓮峯)이라고도 한다. 옛날에 위(魏)와 우(虞) 두 진인(眞人)이 이곳에서 승천하였다고 전하며, 이를 인하여 위우동천(魏虞洞天)이라고도 하며 무위동천(無爲洞天)이라고도 한다.

동궁서광[東宮西廣]  동궁(東宮)과 서광(西廣)은 초(楚)나라의 군대 이름이다.

동궁우익이성[東宮羽翼已成]  동궁(東宮)은 세자(世子)를 이르는 바, 한 고조(漢高祖)의 세자(世子)인 유영(劉盈)을 가리키고, 우익(羽翼)은 곁에서 보좌함을 이른다. 고조(高祖)가 세자(世子)인 유영(劉盈)을 폐하고 척희(戚姬)의 소생인 조왕(趙王) 여의(如意)를 바꿔 세우려고 하자, 장량(張良)이 상산사호(商山四皓)를 초빙하여 태자를 보필하게 하니, 고조(高祖)가 “나는 태자를 바꾸고 싶으나 저 상산사호가 그를 도와 우익이 이미 이루어졌으니 바꾸기 어렵다.[我欲易之 彼四人爲之輔 羽翼已成 難動矣]”라 하고는 그만두었다. <漢書 卷40 張良傳> 우익기성(羽翼旣成).

동궁지변[東宮之變]  위왕(魏王) 이태(李泰)가 당 태종(唐太宗)의 총애를 받자, 황위(皇位) 계승이 위태롭다 여긴 태자 이승건(李承乾)이 한왕(漢王) 이원창(李元昌), 재상(宰相) 후군집(侯君集)과 손을 잡고 정변을 일으켜 황위에 오르려다가 발각되어 이원창과 후군집은 사사되고, 이승건은 폐서인(廢庶人)이 된 사건을 말한다.

동궁지유[東宮之幽]  당 소종(唐昭宗) 광화(光化) 원년(元年 899)에 환관 유계술(劉季述)이 난을 일으켜 소종(昭宗)을 폐위하고 태자인 유왕(裕王)을 옹립하였다. 소종은 동궁(東宮)에 두 달 동안 유폐되어 있다가 최윤(崔胤) 등이 유계술을 죽인 뒤 복위하였다. 유계술(劉季述)은 재상 최윤(崔胤)의 계책으로 사로잡힌 뒤에 수많은 사람들의 몽둥이에 일시에 맞아 죽었다.

동궁춘첩자[東宮春帖子]  동궁(東宮)은 세자나 태자가 거처하는 궁궐로 세자나 태자를 지칭하기도 한다. 춘첩자(春帖子)는 옛날 궁중(宮中)에서 입춘(立春)이 되면 황제·황후·태자의 궁에다 모두 축하하는 시를 써서 붙인 것을 말함.

동궁필선[東宮弼善]  세자시강원 필선을 말한다.

동궁훈업[彤弓勳業]  동궁은 붉은 칠을 한 활인데 옛날 제후(諸侯)가 공을 세우면 천자가 이것을 하사했으므로 공훈의 대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