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도사략[東都事略] 송(宋)나라 왕칭(王偁)이 지은 책이다. 북송(北宋) 9조(朝)의 사적을 1백 30권으로 찬하였는데, 기술이 간략하고 사론(史論)이 공평한 것으로 유명하다.
동도상과[同道相過] 태양(太陽)은 황도(黃道)의 중선(中線)으로 운행하는데, 춘분(春分)과 추분(秋分)때에 황도(黃道)와 백도(白道)가 서로 교차(交叉)하는 것을 동도(同道)라 이르고, 동지(冬至)와 하지(夏至) 때 적도(赤道)의 내외(內外)로 각각 23도를 초과(超過)하는 것을 상과(相過)라 이른다.
동도서말[東塗西抹] 이리저리 간신히 꾸며 대어 맞춤. ‘동쪽에서 바르고 서쪽에서 지운다.’는 뜻으로 이리저리 간신히 꾸며대어 글을 공교롭게 맞춤을 이르는 말이다.
동도이도방[東都履道坊] 백거이(白居易)가 만년에 벼슬에서 물러나 살던 마을 이름이다. 백거이의 칠로회시(七老會詩)의 서(序)에 의하면 그가 나이 74세 때 동도(東都)의 이도방(履道坊)에 있는 그의 집에서 호고(胡杲)·길교(吉皎)·유진(劉眞)·정거(鄭璩)·노정(盧貞)·장혼(張渾)과 함께 일곱 노인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즐긴 뒤 저마다 칠언육운시(七言六韻詩)를 읊어서 그 사실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 칠로회에 이원상(李元爽)과 승려 여만(如滿)이 더 가입하여 구로회(九老會)가 되었다.
동도인[東道人] 동도주(東道主)와 같은 뜻으로, 춘추 시대 진(晉)과 진(秦)이 군대를 연합하여 정(鄭)을 포위했을 때, 정 문공(鄭文公)이 촉지무(燭之武)를 보내서 진 목공(秦穆公)을 달래어 말하기를 “만일 우리 정나라를 그대로 두어 동방 길의 주인으로 삼아서 사자의 왕래에 부족한 것들을 공급하게 한다면 군주께서도 해로울 것이 없습니다.[若舍鄭以爲東道主 行李之往來 共其乏困 君亦無所害]”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春秋左氏傳 僖公30年> 전하여 뒤에는 흔히 빈객을 접대하는 주인의 뜻으로 쓰인다.
동도정의[東道情誼] 주인으로서 손님을 접대하는 정을 말한다. 춘추 시대에 진(晉)나라와 진(秦)나라가 연합하여 정(鄭)나라를 포위했을 때, 정나라의 촉지무(燭之武)가 진 목공(秦穆公)을 만나 “만약 우리 정나라를 그대로 놓아두고서 동도의 주인으로 삼아 사신이 왕래할 때에 부족한 물자와 유숙(留宿)할 사관(舍館)을 제공하게 한다면 임금님에게도 손해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若舍鄭以爲東道主, 行李之往來, 供其乏困, 君亦無所害.]”라고 설득한 고사에서 나왔다. <春秋左氏傳 僖公30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