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도 씻길대로 씻긴 새벽녘
우리 고향 섬진강이 지리산 마루턱을 향해 기어오르다
겨우 그 허리를 한번 껴안고는
크나큰 숨결로 쏟아져 내리듯이
숨가쁘게 나는 산에서 내려왔다
기차를 타고
모르는 산천에서도 깊이 잠들며
풀 돋은 등을 구부려 물을 마시고
털투성이 다리를 뻗고
사람들과 함께 사는 별을 보았다
어디에 가도 깨끗한 이마를 드는 지리산
더 멀리 떠나 있어도
흰 살결로 산의 가슴을 파고드는 강줄기
나는 그 산의 옆구리로 불거져 나온 아들
너는 그 강의 찬 물결에 태어난
은어 같은 딸
가파른 계곡을 가르며 나는 등짐을 하고
너는 풀밭에 뜬 달을 따 마당에 걸자
어디에 가도 우리 등뒤로 큰 산이 숨쉬고
어디에 가 살아도 우리 마음 속으로 넉넉한 강이 흐르듯
밤 들판을 지나 새벽 들까지
새벽 들을 지나 콩밭의 이슬이 마를 때까지
빈 들에 엎드려 살다
이제는 푸르른 들과 함께 누운
가난하지만 착한 이웃들을 불러모아
모닥불을 일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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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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