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자[東門子] 전국 시대 양(梁)나라의 동문오(東門吳)이다. 동문오가 애지중지하던 아들이 죽었는데도 슬퍼하지 않자 그의 가신(家臣)이 이유를 물었는데 “내가 예전에는 자식이 없었는데 근심하지 않았다. 지금 자식이 죽었으니 이는 예전에 자식이 없던 때와 똑같아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왜 근심하겠는가.”라고 했다 한다. <列子 力命>
동문지교[同文之敎] 동문(同文)의 교화. 중용(中庸)의 “지금 온 천하가 같은 수레를 타고 같은 문자를 쓰게 되었다.[今天下車同軌 書同文]”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중국과 같은 문화권 속에 편입되어 혜택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동문지귀[東門之歸] 동문(東門)의 귀향. 벼슬을 그만두고 동대문을 통해 향리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한(漢) 나라 소광(疏廣)이 치사(致仕)를 허락받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공경대부 등 수백 채의 수레가 도성 동문 밖에 나와 환송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71 疏廣傳>
동문지달[東門之達] 동문오(東門吳)의 달관한 심정이나 경지를 이른다. 열자(列子) 역명편(力命篇)에 “위(魏)나라에 동문오(東門吳)라는 사람이 있어 그의 아들이 죽었는데도 비통해하지를 않자 그의 집사가 묻기를 ‘공(公)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기로 세상에 비길 만한 이가 없으셨습니다. 지금 아들이 죽었는데도 비통해하지를 않으시니 어쩐 일이신지요?’라고 하자, 동문오가 ‘내가 일찍이 아들이 없었는데, 아들이 없을 때는 비통해하지를 않았다. 지금은 아들이 죽었으니 아들이 없던 때와 같아진 것인데 내가 어찌 비통해하겠느냐?’”라고 하였다.
동문지요상[東門之堯顙] 공자가 정(鄭) 나라 동문(東門)에 혼자 섰더니 어느 사람이 보고 말하기를 “동문에 한 사람이 있는데, 이마는 요(堯)와 같고 얻어먹지 못한 상가구(喪家狗)와 같다.”라 하였다.
동문지요상[東門之堯顙] 요상은 요 임금의 이마란 뜻인데, 공자가 일찍이 위(衛) 나라의 동문을 나가자, 고포자경(姑布子卿)이 공자를 맞이하여 뵈므로, 자공(子貢)이 그에게 말하기를 “우리 스승이 어떠한가?”라고 하니, 그가 대답하기를 “요 임금의 이마와 순(舜) 임금의 눈과 우(禹) 임금의 목과 고요(皐陶)의 입을 지니었다.”고 하였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동문집성[東文集成] 송백옥(宋伯玉)이 엮은 고문 선집이다. 36권 18책의 필사본으로, 본집 24권 12책, 속집 12권 6책이다. 고려 이후 조선 헌종 때까지의 산문 중 명문을 골라 엮었다.
동문태부[東門太傅] 동문(東門)의 태부(太傅). 동문은 한나라 장안(長安)의 동도문(東都門)이다. 선제(宣帝) 때 태자태부였던 소광(疏廣)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자, 천자와 태자는 황금을 하사하고 공경(公卿)들은 동문 밖에서 성대하게 전별하였는데 수백 량의 수레가 모였다고 한다. <漢書 疏廣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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