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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필련[東門匹練], 동문호저[東門縞紵], 동문황견[東門黃犬], 동문휘고[同文彙考]


동문필련[東門匹練]  공자(孔子)가 안연(顔淵)과 함께 노(魯) 나라 태산(泰山)에 올랐을 때, 오(吳)의 창문(昌門)을 바라보고 안연이 말하기를 “한 필의 누인 베가 보입니다.[見一匹練]”라고 하니, 공자가 이르기를 “그것은 흰 말[白馬]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太平御覽 卷818>

동문호저[東門縞紵]  춘추좌전(春秋左傳) 양공(襄公) 29년에, 오(吳)나라 계찰이 정(鄭)나라를 예방하여 자산(子産)을 만나보고는 흰 명주로 만든 띠[縞帶]를 선사하니 자산이 그 답례로 모시옷[紵衣]을 선사하였다. 이 일로 호저(縞紵)는 벗 사이의 선물 또는 교제의 뜻으로 쓰인다.

동문환[董文煥]  1833~1877. 방명(榜名)은 文渙(문환)이며, 文煥(문환)은 초명이다. 자는 요장(堯章)·세장(世章), 호는 연초(硯樵)·연추(硯秋)이며, 산서성 홍동(洪洞) 사람이다. 함풍 6년(1856) 진사에 급제하여 한림 검토 등을 거쳐 외직으로 감숙성의 감량병비도(甘涼兵備道)·공진계병비도(鞏秦階兵備道)를 지냈다. 저서로 연초산방시집(硯樵山房詩集), 연초산방문존(硯樵山房文存) 등이 있다.

동문황견[東門黃犬]  진(秦)나라 때 승상 이사(李斯)가 무함으로 사형을 당하기 전에 자기 아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너와 함께 다시 누렁이를 끌고 함께 상채의 동문을 나가서 약빠른 토끼를 쫓으려고 한들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吾欲與若復牽黃犬, 俱出上蔡東門, 逐狡兔, 豈可得乎?]”라고 탄식하였다. <史記 卷87 李斯列傳>

동문휘고[同文彙考]  1784년(정조8) 정조가 사대문자(事大文字)가 모두 흩어져 있다 하여 괴원 당상(槐院堂上) 이숭호(李崇祜) 등에게 명하여, 조칙(詔勅)·표(表)·자(咨)로부터 별단(別單)·수본(手本)에 이르기까지 해당 원(院)에서 받은 소속 문서를 모두 찾아서 내용별로 편집하도록 하여, 4년 만에 비로소 완성하였다. 외각(外閣)에 명하여 활자로 인쇄하여 정부(政府) 이하 각 아문(衙門)에 나누어 보관하도록 하고, 그 후에 나온 문자는 3년마다 기록을 첨부하는 것을 법식으로 삼도록 하였다. <弘齋全書 卷184 群書標記6 命撰2, 韓國文集叢刊 262輯>

동문휘고[同文彙考]  조선 후기 대청(對淸)과 대일(對日) 관계의 교섭 문서(交涉文書)를 집대성한 책이다. 초편(初編) 129권 60책과 속편(續編) 36책, 모두 96책이다. 승문원에서 운각활자(芸閣活字)로 간행하였다. 초편은 승문원등록(承文院謄錄) 가운데서 인조 이후의 사대교린에 관한 외교문서를 정리한 것으로, 승문원에서 1784년(정조8) 10월에 하교하여 1788년 12월에 간행하였다. 속편은 이후 여러 차례 이어서 편찬하여 최종으로는 1881년(고종18)까지의 문서를 묶어 간행하였다. 감인당상(監印堂上)에 정창순(鄭昌順), 이숭호(李崇祜), 홍양호(洪良浩), 이재학(李在學) 등이 번갈아 임명되었고 역관 김계환(金啓桓)·김윤서(金倫瑞)·최기령(崔麒齡) 등이 참여하였다. <奎章閣韓國本圖書解題 史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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