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삭투도[東方朔偸桃] 동방삭(東方朔)은 한 무제(漢武帝) 때의 사람으로, 골계(滑稽)와 해학(諧謔)의 솜씨를 능숙하게 발휘하면서 직언(直言)을 곧잘 하여 국정을 바로잡았다. 속설(俗說)에 그가 서왕모(西王母)의 복숭아를 훔쳐 먹은 덕분에 죽지 않고 장수했다고 하여 ‘삼천갑자 동방삭(三千甲子東方朔)’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한무고사(漢武故事)에 “동군(東郡)에서 단인(短人)을 바쳤는데, 무제(武帝)가 동방삭을 불러 동방삭이 이르자, 단인이 동방삭을 가리키며 무제에게 말하기를 ‘서왕모가 심은 복숭아가 3천 년 만에 한 번 꽃이 피고 3천 년 만에 열매가 한 번 여는데, 이 아이가 불량하여 벌써 세 번이나 훔쳐 먹었습니다’라고 했다.”라고 하였다. 저승사자가 그를 잡아가려 하였지만 그를 알아볼 길이 없자 꾀를 내어 냇가에서 숯을 씻고 있었더니, 동방삭이 지나가면서 숯을 씻는 이유를 물어보고는 “삼천갑자를 살았지만 숯을 씻는 것은 처음 보았다.”라고 하므로, 그가 동방삭임을 알고 잡아갔다 한다.
동방삭소핵주동언[東方朔所劾奏董偃] 동방삭(東方朔)이 동언(董偃)을 탄핵하여 아룀. 동방삭(東方朔)은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문신으로, 자(字)는 만천(曼倩)이며 평원(平原) 염차(厭次) 사람이다. 해학에 뛰어나고 사부(辭賦)에도 능했는데 무제(武帝)에게 직언(直言)과 풍간(諷諫)을 잘하였다. 동언(董偃)은 무제(武帝)의 고모인 관도공주(館陶公主: 竇太主두태주)의 어린 정부(情夫)로 무제(武帝)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이다. 무제(武帝)의 총애가 지나치자 동방삭(東方朔)이 동언(董偃)의 잘못을 일일이 밝히며 탄핵하였는데, 무제(武帝)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동방삭(東方朔)의 직언을 받아들여 동언(董偃)에 대한 총애를 거두었다.
동방삭유아[東方朔流亞] 동방삭(東方朔)의 아류(亞流). 동방삭은 전한(前漢)의 무제(武帝)의 신하이며, 익살을 잘 부려 담소할 때는 항상 풍자(風刺)로서 상대를 웃기는 말을 하였으므로, 익살을 잘 하는 사람을 그의 유아(流亞)라고 한다. <유기>
동방삭할육[東方朔割肉] 동방삭(東方朔)은 전한 무제(前漢武帝) 때 사람으로 해학(諧謔)을 잘하기로 이름났다. 한 번은 복일(伏日)에 황제가 종관(從官)들에게 고기를 하사했는데 태관 승(太官丞)이 날이 저물도록 오지 않아 고기를 나누어 가질 수 없었다. 이에 동방삭이 칼을 들어 자기 몫의 고기를 잘라낸 다음, 동료 관원들에게 “복날에는 일찍 돌아가야 하니 하사한 고기를 가지고 가겠소.”라 하고는 고기를 가지고 가버렸다. 태관(太官)이 이 사실을 상주(上奏)하여 황제가 동방삭에게 “어제 고기를 내렸더니, 조서를 기다리지 않고 칼로 고기를 잘라 가지고 간 것은 무슨 까닭인가?……선생은 일어나서 자책하라.[昨賜肉 不待詔 以劍割肉去之 何也……先生起自責也]”라고 하니, 동방삭이 재배하고 말하기를 “삭아, 삭아, 하사를 받고 조서를 기다리지 않음은 어찌 그리 무례하며, 칼을 뽑아 고기를 벤 것은 어찌 그리 장하며, 베되 많이 베지 않은 것은 어찌 그리 청렴하며, 돌아가서 아내에게 준 것은 어찌 그리 어질었던고.[朔來朔來 受賜不待詔 何無禮也 拔劍割肉 壹何壯也 割之不多 又何廉也 歸遺細君 又何仁也]”라고 하므로, 무제가 웃으면서 이르기를 “선생에게 자책을 하게 했더니, 도리어 자찬을 하는구려.[使先生自責 乃反自譽]”라 하고, 다시 술 한 섬, 고기 100근을 하사하니, 동방삭이 집에 가서 이것을 다시 아내에게 주었다고 한다. <漢書 卷65 東方朔傳> 당나라 두보(杜甫)의 사일양편(社日兩篇)에 “생각하노니 옛날 동방삭은 해학하며 고기를 잘라 가지고 돌아갔지.[尙想東方朔 詼諧割肉歸]”라고 하였다. 본래 이 고사는 복날과 관련한 고사인데, 진한(秦漢) 시대 이후로는 복날에 사단에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두보가 이 고사를 가져다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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