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보[同保] 같은 보오(保伍)에 사는 사람을 말한다.
동보[洞報] 동리(洞里)에서 관청으로 올리던 보고이다.
동보[同甫] 동보는 진량(陳亮)의 자(字)로 학자들이 용천 선생(龍川先生)이라고 불렀다. 가슴에 웅대한 계책을 품고 있었으나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몇 번이나 하옥되었다가 겨우 풀려나곤 하였다. 주희(朱熹)와 황제 왕패(皇帝王霸)의 학문에 대해 토론을 벌이기도 하였는데 주희가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또한 그의 뜻을 뺏지 못했다는 일화가 전해 온다. <宋元學案 卷56>
동보[董父] 옛날 요순(堯舜) 시절에 요(飂)나라의 숙안(叔安)이란 임금의 후예 중에 동보(董父)란 사람이 있었는데, 용의 습성을 잘 알아서 기르자 용이 많이 모여들었다. 동보는 이 용을 잘 길들여 순 임금을 섬겼고, 순 임금은 그에게 동(董)이란 성과 환룡(豢龍)이란 씨를 내렸다고 한다. 그 후 유루(劉累)가 환룡씨에게서 용을 길들이는 법을 배운 뒤 하(夏)나라 14대 임금 공갑(孔甲)을 섬겨 어룡(御龍)이란 씨를 하사받았다. <春秋左氏傳 昭公 29年>
동보담병[同父談兵] 동보(同父)는 송 효종(宋孝宗) 때의 학자인 진량(陳亮)의 자이다. 재기(才氣)가 뛰어나 병법을 담론하길 좋아하였으며, 일찍이 옛사람이 무력을 사용한 것과 승리하고 패배한 것에 대한 사적을 상고하여 작고론(酌古論)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宋史 卷四百三十六 陳亮傳>
동보지논병 서산지연진[同甫之論兵 西山之演陣] 동보(同甫)의 병법(兵法)을 논함과 서산(西山)의 진법(陣法)을 부연함. <孫子髓> 동보(同甫)는 남송(南宋)의 학자인 진량(陳亮)의 자로 호가 용천(龍川)인데, 실사실공(實事實功)을 강조하며 병사를 논하기를 좋아하여 지나치게 공리(功利)를 추구한다는 주자(朱子)의 비판을 받았다. 서산(西山)은 남송의 학자인 채원정(蔡元定)의 호로 주자에게 수학하였는바, 진도(陣圖)를 만들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동보진씨[同甫陳氏] 동보(同甫)는 남송(南宋)의 학자인 진량(陳亮)의 자(字)로 학자들이 용천 선생(龍川先生)이라고 불렀다. 가슴에 웅대한 계책을 품고 있었으나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몇 번이나 하옥되었다가 겨우 풀려나곤 하였다. 주희(朱熹)와 황제 왕패(皇帝王霸)의 학문에 대해 토론을 벌이기도 하였는데 주희가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또한 그의 뜻을 빼앗지 못했다는 일화가 전해 온다. <宋元學案 卷56>
동보희담병[同父喜談兵] 동보(同父)가 병법 논하기를 좋아함. 동보(同父)는 송 효종(宋孝宗) 때의 학자인 진량(陳亮)의 자임. 재기(才氣)가 뛰어나 병법을 담론하길 좋아하였으며, 일찍이 옛사람이 무력을 사용한 것과 승리하고 패배한 것에 대한 사적을 상고하여 작고론(酌古論)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宋史 卷436 陳亮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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