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복[僮僕] 나이 어린 사내아이 종. 말구종(말驅從) 드는 하인. 예전에는 하인을 ‘童(동)’이라 했고, 아이를 ‘僮(동)’이라 하였는데, 뒤에는 서로 바꾸어 쓰게 되었다. ‘가동(家童)’이라 하는 것이 오히려 옛날 표현에 부합한다. 왕유(王維)의 시 숙정주(宿鄭州)에 “고향 떠나 함께할 사람 없어서, 외로운 객 어린 종과 가까워졌네.[他鄕絶儔侶 孤客親僮僕]”라고 하였다. 참고로, 말구종(말驅從)은 말을 타고 갈 때에 고삐를 잡고 앞에서 끌거나 뒤에서 따르는 하인을 이른다.
동복[同福] 전라도 화순(和順) 지역에 있던 현의 이름으로, 지금은 화순군(和順郡) 동복면이 되었다.
동복[同復] 한 어머니 소생의 형제를 이른다.
동복생신경[僮僕生新敬] 다시 벼슬길에 나아감을 뜻한다. 당나라 맹교(孟郊)의 송한유종군(送韓愈從軍)에 “지사가 은혜에 감격해 벼슬에 나아가니, 옷은 변해도 본성은 변치 않았네. 그러나 친한 손님들은 보는 태도를 바꾸고, 동복들은 새로이 공경을 일으킨다.[志士感恩起 變衣非變性 親賓改舊觀 僮僕生新敬]”라고 하였다.
동복형[同腹兄] 동복(同腹)에서 난 형(兄)을 이른다.
동봉[東峯] 김시습(金時習)으로,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열경(悅卿)이다. 호는 매월당(梅月堂), 청한자(淸寒子), 동봉(東峯), 벽산청은(碧山淸隱), 췌세옹(贅世翁), 법호는 설잠(雪岑), 시호는 청간(淸簡)이다. 허목(許穆)의 기언(記言) 권11 청사열전(淸士列傳)에 의하면, 김시습은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글을 읽을 줄 알고, 5세에 대학장구(大學章句)와 중용장구(中庸章句)에 통달하였다. 그러나 1455년(세조1)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일어나자, 책을 모두 불사르고 승려가 되어 속세와 인연을 끊었다고 한다. 그 뒤 환속하기도 하였으나 끝내 그 천재성을 살리지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동봉[東峯] 동봉은 서울의 동쪽에 자리한 지금의 성북구 정릉동 일대의 산으로 정산(貞山)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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