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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붕이낙종응[銅山崩而洛鐘應], 동산사부[東山謝傅], 동산사죽[東山絲竹], 동산삼년[東山三年]


동산붕이낙종응[銅山崩而洛鐘應]  상호 긴밀하게 반응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에서 촉군(蜀郡)의 동산(銅山)이 무너지자 위(魏)의 낙양(洛陽) 궁궐 안에 있는 종이 울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는 서로 구한다.[同聲相應同氣相求]”라고 하였는데, 공영달(孔潁達)의 소(疏)에 “누에가 실을 토함에 상(商)음을 내는 현이 끊어지고, 동산이 무너짐에 낙양의 종이 응한다.[蠶吐絲而商弦絶 銅山崩而洛鐘應]”라는 구절이 있다.

동산붕이낙종응[銅山崩而洛鍾應]  장서(葬書)에 “한(漢)나라 미앙궁(未央宮)에 하루는 까닭 없이 종(鍾)이 저절로 울렸다. 동방삭(東方朔)이 ‘반드시 동산(銅山)이 무너짐에 응한 것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얼마 뒤 서촉(西蜀)에서 과연 동산(銅山)이 무너졌다고 아뢰었는데, 날짜를 따져보니 바로 미앙궁(未央宮)의 종(鍾)이 울렸던 날이었다. 황제가 동방삭에게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답하기를 ‘동(銅)은 산에서 나오니, 기(氣)가 서로 감응한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 부모에게 신체를 받은 것과 같습니다.’라고 하였다.”라고 보인다. 산과 종(鍾)은 서로 다른 종류이지만 종(鍾)의 재료인 동(銅)이 동산(銅山)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서로 감응한 것이다.

동산사부[東山謝傅]  사부(謝傅)는 동진(東晉) 중기의 명신(名臣)인 사안(謝安)으로, 그의 증직(贈職)이 태부(太傅)이므로 이렇게 부른다. 그가 출사(出仕)하기 전 동산(東山)에 은거하면서 기생을 데리고 산천을 유람하며 풍류를 즐겼다 한다.

동산사상[東山謝相]  동산(東山)의 사상(謝相)은 동진(東晉)의 명상(名相) 사안(謝安)을 말한다. 사안이 40세가 되기까지 동산(東山)에서 놀고 벼슬하지 않으며 매양 자기 내외 자질들과 기녀들을 거느리고 동산의 별장에서 주연을 푸짐하게 베풀고 풍류를 한껏 즐기기도 했었다. 이에 사람들이 “안석이 나오려 하지 않으니, 장차 창생을 어찌 할까.[安石不肯出, 將如蒼生何.]”라고 하였더니, 뒤에 나와 명재상(名宰相)이 되었다고 한다. 안석(安石)은 사안의 자이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동산사죽[東山絲竹]  사죽(絲竹)은 현악기와 관악기이다. 동산(東山)은 회계(會稽)에 있는 산 이름인데, 일찍이 진(晉)나라의 사안(謝安)이 이곳에 은거하였다. 사안은 풍채가 뛰어나고 식견이 높았는데, 마흔 살까지 회계의 동산에 은둔하며 음악과 기생으로 즐기다가, 뒤에 환온(桓溫)의 부름을 받고 세상에 나가 외적(外敵)을 물리치고 내정(內政)을 닦는 데 탁월한 공을 세워 벼슬이 태보(太保)에 이르렀다. <晉書 卷79 謝安傳>

동산삼년[東山三年]  시경(詩經) 빈풍(豳風) 동산(東山)에 “내가 동산 가서 오래 돌아오지 못했나니 …… 내 이를 보지 못한 지 지금까지 삼 년일세.[我徂東山, 慆慆不歸, …… 自我不見, 于今三年.]”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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