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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성색[東山聲色], 동산쇄금[東山碎金], 동산시[東山詩], 동산아량[東山雅量], 동산안석[東山安石]


동산성색[東山聲色]  동진(東晉)의 사안(謝安)은 젊어서부터 이름이 나 여러 차례 조정에서 불렀다. 그러나 그는 이를 거절하고 회계(會稽)의 동산에 은거하여 주연(酒宴)을 열고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동산성색[東山聲色]  진(晉) 나라 때 사안(謝安)이 40여 세까지 동산에 은거(隱居)하던 동안, 항상 가무(歌舞)에 뛰어난 기녀(妓女)들을 데리고 연회(宴會)를 베풀어 풍류(風流)를 한껏 즐겼던 데서 온 말이다.

동산세우[東山細雨]  세우(細雨)는 가랑비이다. 시경(詩經) <동산(東山)>은 주공(周公)이 동방 원정에서 돌아와 병사들의 노고를 위로한 노래인데, “내가 동쪽에서 돌아올 때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렸다.[我來自東 零雨其濛]”라고 하였다.

동산쇄금[東山碎金]  동산(東山)은 회계(會稽) 동산에 은거했던 진(晉) 나라 사안(謝安)의 별칭인데, 환온(桓溫)이 일찍이 사안의 짧은 글을 보고는 “이것은 안석의 쇄금이다.[此是安石碎金]”라고 찬탄을 했던 고사가 전해진다. <世說新語 文學>

동산시[東山詩]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감회를 읊은 것이다. 시경(詩經) 빈풍(豳風) 동산은 주공(周公)을 따라 멀리 전쟁터에 나갔던 군사가 고향에 돌아온 심정을 읊은 시인데, 그중에 “내가 동산에 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했었는데, 동쪽에서 돌아올 적에 부슬비 자욱이 내렸다네.[我徂東山 慆慆不歸 我來自東 零雨其濛]”라는 구절이 나온다.

동산시[東山詩]  동산(東山)은 시경(詩經) 빈풍(豳風)의 편명이다. 주 무왕(周武王)이 주(紂)를 멸하고 그의 아들 무경(武庚)을 대신 세운 다음, 자기 아우인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을 은(殷)에 보내 무경을 감시하게 하였는데, 무왕이 죽고 어린 성왕(成王)이 즉위하자 관숙과 채숙이 무경에게 붙어 성왕을 무너뜨리려고 하였다. 이에 주공(周公)이 이들을 모두 토멸하였는데, 이 시는 바로 주공이 무경 등을 토멸하고 3년 만에 돌아와서 병사들을 위로한 노래라고 한다.

동산시[東山詩]  시경(詩經) 동산(東山)을 가리킨다. 이 시는 오랫동안 행역(行役)을 나간 군정(軍丁)이 자기 집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동산아량[東山雅量]  동산(東山)의 넓은 도량. 동산은 일찍이 동산에 은거했던 진(晉)나라 사안(謝安)을 가리킨다. 일찍이 부견(符堅)이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와서 경사(京師)가 크게 두려워하던 때에 사안이 마침 정토 대도독(征討大都督)에 임명되었는데, 그는 백만 대군의 강적이 쳐들어왔는데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조용한 표정으로 조카인 사현(謝玄)과 더불어 별장[別墅] 내기 바둑을 두어서 대장군다운 풍도를 보였던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동산아량위기국[東山雅量圍棋局]  동산은 동진(東晉)의 사안(謝安)이다. 사안은 40세에 이르도록 동산에 은거하면서 늘 내외 자질(子姪)들과 기녀들을 거느리고서 주연을 베풀고 풍류를 즐겼다. 한번은 여러 사람과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갈 때 풍랑이 심하게 일어 모두가 두려워하며 아우성을 쳤는데, 태연자약하게 노래를 읊는 사안의 모습을 보고 뱃사공이 진정하고 노를 저어 무사하게 돌아왔으므로 사람들이 그의 아량에 감복했다고 한다. 또 전진(前秦)의 왕 부견(苻堅)이 백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동진의 서울이 모두 두려움에 떨었는데, 정토대도독(征討大都督) 사안이 군대를 보내 격파하게 하고는 태연히 바둑을 두어 안심시키면서 승첩의 보고를 기다렸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동산아흥[東山雅興]  동산의 고상한 흥취란 곧 동산에 은거했던 동진(東晉)의 명신 사안(謝安)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사안은 40세에 이르도록 동산에 은거했는데, 그는 특히 당대에 풍류와 아량(雅量)이 높기로 유명했던바, 매양 내외 자질(子姪)들과 기녀들을 거느리고 동산의 별장에서 주연을 푸짐하게 베풀고 풍류를 한껏 즐기기도 했었다. 두보(杜甫)의 시 봉관엄정공청사민산타강화도십운(奉觀嚴鄭公廳事岷山沱江畫圖十韻)에 “예전에 사 태부도, 산수의 뜻을 잊기 어려웠었네.[從來謝太傅 丘壑道難忘]”라고 하였다.

동산안석[東山安石]  동산(東山)은 동진(東晉) 때 사안(謝安)이 은거했던 곳이고, 안석은 사안의 자이다. 사안은 40세에 이르도록 동산에 은거하면서 늘 내외의 자질(子姪)들과 기녀들을 거느리고서 주연을 베풀고 풍류를 즐겼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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