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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적석[東山赤舃], 동산절극[東山折屐], 동산지기[東山之棋], 동산지지[東山之志]


동산적석[東山赤舃]  동산(東山)은 상대방이 탁월한 경륜을 가지고도 세상에 나오지 않고 은거하고 있음을 뜻한다. 진(晉)나라 사안(謝安)은 경륜과 지략이 뛰어나 명망이 높았는데 회계(會稽)의 동산에 은거하여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적석(赤舃)은 원래 주(周)나라 성왕(成王) 때 주공이 붉은 신을 신고 편안하고 침착하게 위의(威儀)를 갖추었음을 말한다. <詩經 狼跋>

동산적석[東山赤舃]  동산의 붉은 신발. 동산은 회계(會稽)의 동산으로 이곳에 은거(隱居)한 사안(謝安)을 가리킨다. 진(晉)나라의 재상인 사안은 자가 안석(安石)으로 경륜과 지략이 뛰어나 명망이 높았는데 회계의 동산에 은거하자, 당시 사람들은 “안석이 세상에 나오지 않으니, 창생들을 어찌하려는가.”라고 말하였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붉은 신발[赤舃]은 시경(詩經) 한혁(韓奕)에 “검은 곤의와 붉은 신[玄袞赤舃]”이라 하여 공후(公侯)의 차림새를 형용하였다.

동산절극옹[東山折屐翁]  동산(東山)은 진(晉)나라의 명재상인 사안(謝安)이 재상이 되기 전 20여 년간 은거하였던 곳으로 회계(會稽)에 있는바, 노인은 바로 사안을 가리킨다. 사안이 재상으로 있을 적에 전진의 부견(苻堅)이 대군을 이끌고 침략하니, 사안은 도성에 있으면서 조카 사현에게 군대를 이끌고 가서 막게 하였다. 사현이 비수(淝水)의 싸움에서 대승을 거둔 다음 가장 먼저 사안에게 파발로 보고하니, 손님과 바둑을 두고 있던 사안은 이를 짐짓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바둑을 끝마쳤으나, 바둑을 끝내고 손님이 가자 내실로 들어가면서 너무 기뻐 문턱에 나막신 굽이 꺾이는 줄도 몰랐다는 고사가 있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동산지기[東山之棋]  동산(東山)은 일찍이 동산에 은거했던 진(晉)나라 사안(謝安)을 가리킨다. 일찍이 부견(符堅)이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와서 경사(京師)가 크게 두려워하던 때에 사안이 마침 정토 대도독(征討大都督)에 임명되었는데, 그는 백만 대군의 강적이 쳐들어왔는데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조용한 표정으로 조카인 사현(謝玄)과 더불어 별장[別墅] 내기 바둑을 두어서 대장군다운 풍도를 보였던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동산지기상[東山之氣象]  진(晉)나라 사안(謝安)처럼 속세에 대한 마음을 접고 유유자적하겠다는 말이다. 동산은 사안의 별칭이다. 그가 벼슬길에 나아가기 전에 회계(會稽)의 동산에 은거하면서 계속되는 조정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유유자적했던 고와동산(高臥東山)의 고사가 전하는데, 동산에서 20여 년 동안 한가로이 은거할 때 “안석이 나오려 하지 않으니, 장차 창생을 어찌 할까.[安石不肯出, 將如蒼生何.]”라는 말을 듣기도 하였다. 안석은 사안의 자(字)이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동산지지[東山之志]  동산(東山)의 뜻. 초야에 은거하려는 뜻을 말한다. 동산은 회계(會稽)의 동산으로 이곳에 은거(隱居)한 사안(謝安)을 가리킨다. 진(晉)나라의 재상인 사안은 자가 안석(安石)으로 경륜과 지략이 뛰어나 명망이 높았는데, 조정에 있으면서도 늘 다시 동산에 돌아가려는 뜻을 버리지 않았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동산고와(東山高臥).

동산지지[東山之志]  벼슬하지 않고 물러나려고 한다는 말이다. 진(晉)나라 태부(太傅) 사안(謝安)이 처음에 저작랑(著作郞)이 되었다가 병으로 인해 벼슬을 버리고 동산에 은거하였는데, 조정에서 누차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그러자 당시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안이 나오지 않으려고 하니 창생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하였다. 후세에 이로 인해 동산을 어진 이의 출처를 비유하는 전거로 삼았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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