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동색친구[同色親舊], 동생[同生], 동생[東生], 동생[童生], 동생[董生]


동색친구[同色親舊]  한 색목(色目)에 속하는 친구. 같은 당파(黨派)의 친구를 이른다.

동생, 청생, 사생[童生, 靑生, 社生]  명사(明史) 선거지(選擧志)와 청사(淸史) 선거지에 의하면, 중앙 학교인 국학(國學: 국자감國子監)과 지방 학교인 부·주·현학(府州縣學) 두 가지가 있었다. 지방 학교 학생[生員]의 경우는 국학에 들어가야 벼슬할 수가 있었다. 국학에 들어간 학생은 감생(監生)이라 하는데, 매년 뽑혀 갔으니, 이것을 세공(歲貢)이라 했다. 학생의 종류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명대(明代) 초기에는 각 학교의 학생 수가 일정하게 정해져 있었더니, 얼마 후에는 정원 외에 증원[增廣]을 마구 하였다. 그러다가 선덕(宣德: 명 선종明宣宗의 연호) 연간에 와서는 증원의 수도 정하는 동시에 학생들에게 늠료(廩料)를 지급하였으니, 이를 늠선생원(廩膳生員)이라 하고, 증원된 학생은 증광생원(增廣生員)이라 하였으며, 인재가 많아짐에 따라 정원 외에 더 뽑아 말석에서 청강하게 하였으니 이를 부학생원(附學生員)이라 하였다. 처음 입학한 부학생원을 제외한 이들 학생은 모두 국학에 뽑아 올리는 세공의 대상이 되었다. 이밖에 아직 입학하지 못한 사자(士子)들은 통틀어 동생(童生)이라 하였는데, 향시(鄕試)가 실시되는 해에 이들 중에서 한두 명의 우수한 자를 뽑아 여러 학생들과 함께 시장(試場)에 들어가게 하였으니 이를 충장유생(充場儒生)이라 하였다. 이들은 이 시장에서 합격할 경우 곧 거인(擧人)이 될 수도 있었지만, 합격하지 못할 경우는 제학관(提學官)이 실시하는 시험이 있을 때를 기다려야만 하였다. 그래서 그 시험에 합격하면 입학자격을 얻게 되었다. 제학관은 재임 3년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여러 학생들의 학업 성적을 고시하는데 6등급으로 그들의 우열을 정하였으니, 이를 세고(歲考)라 하였다. 그들의 성적을 고시한 결과 1등일 경우는 늠선생원이 궐원될 때 그로 충원하고 그 다음은 증광생원에 보충하였으며, 5등일 경우에는 늠선생원과 증광생원은 한 등급씩 강등시키고 부학생원은 청의(靑衣: 조례皁隷의 옷을 입혔기 때문에 청의라 한다.)로 삼고, 6등일 경우는 학생에서 내쫓았다. <明史 選擧志> 청의의 경우는 사(社: 사학社學)로 내보냈으니 이를 사생(社生)이라 한다. 사학에서도 성적이 여전히 낮을 경우는 평민으로 내쳤다. 청대(淸代)에는 사학(社學)과 의학(義學)이란 것이 있었으니, 사학은 각 향(鄕)에 세워 학문과 품행이 우수한 자를 뽑아 사사(社師)로 삼고 12세 이상인 그 고을 자제들을 가르치게 하였으며, 의학은 성(省)·부(府)·주(州)·현(縣)에 세워서 빈한한 집 자제들을 가르쳤다. <淸史 選擧志>

동생[同生]  같은 핏줄을 타고난 형제. 동복 형제. 같은 아버지에게서 난 자식, 즉 형제자매를 가리킨다.

동생[東生]  남인(南人)들이 동학(東學: 서울의 사학四學 가운데 하나)에 있었으므로 남인을 가리킨다.

동생[董生]  당 덕종(唐德宗) 때의 동소남(董召南)을 가리킨다. 동생이 동백산(桐柏山)에 은거하여 의를 행하고 부모를 잘 봉양하였다. 당나라 때 한유(韓愈)가 지은 동생행(董生行)에 의하면, 당나라 정원(貞元) 연간에 수주(壽州) 안풍현(安豐縣) 사람 동생(董生)이 효성이 뛰어나 기르는 가축들도 감화를 받을 정도였는데, 어미 개가 먹이를 구하러 나가 돌아오지 않자 어미 닭이 강아지에게 먹이를 주었다고 한다. <小學 善行編>

동생[董生]  동소남(董邵南)을 가리킨다. 당조(唐朝) 정원(貞元) 연간을 살았던 은자로 수주(壽州) 안풍(安豊) 사람이다. 과거에 낙방한 뒤 고향에 은거할 때 의행(義行)과 효행(孝行)으로 이름이 높았다. 사람들이 그가 살던 백로진(百爐鎭)을 은현진(隱賢鎭)으로 불렀다.

동생[董生]  당나라 때 안풍(安豐) 사람으로 은사(隱士)인 동소남(董召南)을 가리킨다. 동소남은 일찍이 진사(進士)가 되었으나 뜻을 얻지 못했으며, 특히 효성스럽기로 이름났었다. 한창려집(韓昌黎集) 권2 고시(古詩) 차재동생행(嗟哉董生行)에 “아, 동생이여, 아침엔 들에 나가 농사를 짓고, 저녁엔 돌아와서 옛사람의 글을 읽네. 하루 종일 쉬지를 않으며, 산에 가서 나무도 하고, 물에 가서 고기도 잡네. 주방에는 맛난 음식 갖춰져 있고, 대청에선 평안한지 물어본다네. 부모님은 근심을 아니 하시고, 처자식은 탄식을 아니 한다네.[嗟哉董生朝出耕, 夜歸讀古人書. 盡日不得

동생[童生]  동생(童生)은 과거제도에서 부현학(府縣學)에 입학하여 생원의 자격을 얻는 고시에 응하는 자를 말한다.

동생[董生]  명 나라 사신 동월(董越)로 조선부(朝鮮賦)를 지었다.

동생[董生]  삼국 시대 촉(蜀)의 학자, 동화(董和). 음양학과 역학(曆學)을 연구하여 통건론(通乾論) 10권을 지었다.

동생[董生]  동생(董生)은 한(漢)나라 때 학자 동중서(董仲舒)이다. 춘추(春秋)를 전공하여 경제(景帝) 때 박사(博士)가 되었는데, 학문에 전념하여 휘장을 드리우고 강송(講誦)하면서 3년 동안 정원을 한 번도 내다보지 않았다고 한다. 현량대책(賢良對策)을 올려 유학(儒學)을 존중하고 백가(百家) 사상을 배척할 것을 주장하여 경학(經學)의 지위를 높이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저서에 춘추번로(春秋繁露) 등이 있다. <漢書 권56 董仲舒傳>

동생[董生]  한 무제(漢武帝) 때 강도상(江都相)을 지낸 동중서(董仲舒)를 가리킨다. 한 무제가 즉위하여 현량(賢良)과 문학(文學)의 선비를 많이 등용하였을 때 현량으로 뽑힌 동중서는 하늘과 사람은 서로 감응한다는 요지의 천인삼책(天人三策)을 올리면서 육예(六藝)의 과(科)와 공자(孔子)의 학술을 배우지 않은 자는 등용하지 말라고 건의하였다. 그러자 무제가 이 대책을 채택하여 시행함으로써 이후 중국에서 유학(儒學)이 정통의 학문으로 되었다. <漢書 卷56 董仲舒傳>

동생[董生]  한나라 광천(廣川) 출신의 경학자(經學者) 동중서(董仲舒)를 말한다. 소시에 춘추(春秋)를 전공하여 경제(景帝) 때에 박사(博士)가 되었는데 휘장을 드리우고 강송(講誦)하매 그 얼굴을 볼 수 없었고 3년 동안 정원을 내다보지 않고 학문에만 독실하니 학사(學士)들이 모두 존중했다고 한다. 무제(武帝) 때에는 왕명에 의해 현량과(賢良科)의 대책(對策)을 연거푸 세 번 올리고 바로 강도상(江都相)에 임명되었는데, 뒤에 공손홍(公孫弘)에게 미움을 받아 교서왕(膠西王)의 승(丞)으로 좌천되고, 나중에 벼슬을 그만두고 저술에 힘쓰다 생을 마쳤다. <史記 卷121 儒林列傳> 그의 현량대책(賢良對策)은 유학을 존중하고 백가 사상을 배척할 것을 주장하여 경학의 지위를 높이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저서에 춘추번로(春秋繁露) 등이 있다.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