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공사[同生共死] 서로 생사(生死)를 같이 함을 이른다.
동생법[童生法] 청(淸) 나라 강희(康煕) 때에 생긴 과시(科試) 제도의 하나이다. 주·현·부(州縣府)에서 동생(童生)을 고취(考取)함에 그 숫자를 제한하지 않았으며, 주·현·부의 지방 고시에 합격하여 동생이 된 자는 중앙 고시(考試)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동생불규원[董生不窺園] 한(漢) 나라 때 학자 동중서(董仲舒)이다. 춘추(春秋)를 전공하여 경제(景帝) 때 박사(博士)가 되었는데, 학문에 전념하여 휘장을 드리우고 강송(講誦)하면서 3년 동안 정원을 한 번도 내다보지 않았다고 한다. <漢書 卷56 董仲舒傳>
동생심장려[董生深長慮] 동생(董生)은 한(漢)의 유학자 동중서(董仲舒)이다. 동중서가 재이지기(災異之記)를 써서 사람의 잘못이 결국 천재지변을 부른다는 경고의 뜻을 담았는데, 그 속에 풍자가 들어 있다 하여 천자(天子)로부터 죄를 받고 그 후로는 끝내 재이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史記 儒林列傳>
동생어초[董生漁樵] 동생(董生)은 당(唐)나라 때의 고사(高士) 동소남(董召南)이다. 안풍(安豐)에 살았는데 그의 청렴함과 효행이 워낙 우뚝하여 문장가 한유(韓愈)가 동생행(董生行)이란 노래를 지어 “딱하다, 동생이여! 아침에 나가 농사짓고, 밤에 돌아와 고인의 책을 읽네. 하루 종일 쉬지 못하고 산에서 나무하고 물에서 고기 잡아, 부엌에서는 맛난 음식 차리고 당에 올라서는 부모의 안부 살피네. 부모는 근심이 없고, 처자식은 원망이 없네.[嗟哉董生 朝出耕 夜歸讀古人書 盡日不得息 或山而樵 或水而漁 入廚具甘旨 上堂問起居 父母不慼慼 妻子不咨咨]”라고 칭송하였다. <小學 善行>
동생유[董生帷] 동생(董生)의 장막. 동생(董生)은 한(漢) 나라 때의 대유(大儒)인 동중서(董仲舒)를 가리킨다. 그가 경제(景帝) 때에 박사가 되어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학문에 열중하여 “휘장을 내리고 강송하며 3년간을 뜰을 엿보지 않았다.[下帷講誦, 三年不窺園.]”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깊이 들어앉아 독서에 전념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漢書 卷56 董仲舒傳>
동생유견[董生乳犬] 동생은 당(唐) 나라 때의 은사(隱士)인 동소(董召)를 이른다. 동소의 집이 매우 가난하였으므로, 개도 새끼를 먹일 것이 없어 어미가 먹이를 구하러 나간 사이에 닭이 와서 벌레를 쪼아가지고 개 새끼를 먹이려 하였으나, 개 새끼는 먹지 않고 슬피 울기만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韓昌黎集 董生行>
동생일수[冬生一穗] 한비자(韓非子) 설림(說林)에 “열 명의 요 임금이 있다 할지라도 겨울에는 한 줄기의 이삭도 피워 올리지 못한다.[雖十堯不能冬生一穗]”는 말이 나온다.
동생장려[董生長慮] 동생(董生)은 한(漢)의 유학자 동중서(董仲舒)를 이른다. 동중서가 재이지기(災異之記)를 써서 사람의 잘못이 결국 천재지변을 부른다는 경고의 뜻을 담았는데, 그 속에 풍자가 들어 있다 하여 천자(天子)로부터 죄를 받고 그 후로는 끝내 재이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史記 儒林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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