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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도량[東西跳梁], 동서림[東西林], 동서무[東西廡], 동서문자[同書文字], 동서범차[東西汎差]


동서도량[東西跳梁]  먹이를 찾아 껑충거리며 이리저리 날뜀을 이른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그대도 살쾡이를 본 일이 있을 것이다. 몸을 바짝 낮추고 엎드려서 나와 노는 작은 짐승들을 노리고 또 먹이를 찾아 東으로 西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높고 낮은 데를 가리지 않는다. 그러다가 덫에 걸리기도 하고 그물에 걸려 죽기도 한다.[子獨不見狸狌乎. 卑身而伏, 以候敖者, 東西跳梁, 不辟高下, 中於機辟, 死於罔罟.]”라고 한 데서 보인다.

동서동료[東西洞獠]  료(獠)는 오늘날 광동(廣東)․광서(廣西)․호남(湖南)․사천(四川)․귀주(貴州)․운남(雲南) 지역에 있던 소수민족에 대한 경멸적 호칭이다. 구당서(舊唐書) 태종본기(太宗本紀)에는 동서오동(東西五洞)으로 되어 있고, 신당서(新唐書) 남평료(南平獠)에는 동서옥동(東西玉洞)으로 되어 있다. 또한 장사귀묘지명(張士貴墓誌銘)에는 동서왕동(東西王洞)으로 되어 있다. 신당서(新唐書) 지리지(地理志)에 공주(龔州)는 영남도(嶺南道)에 속한다는 점에서 여기서 언급한 료(獠)는 영남 지역에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

동서림[東西林]  동림당(東林黨)과 이의 반대 당. 동림당은 명 신종(明神宗)이 총애하는 궁녀의 아들을 태자로 세우려 하자, 이를 간하다 향리(鄕里)로 물러간 고헌성(顧憲成)·고반룡(高攀龍) 등이 정의를 내세워 기탄없는 비판을 함으로써 생긴 당이다.

동서무[東西廡]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를 이르는 말로 문묘(文廟) 안에 유현(儒賢)들을 배향(配享)한 동쪽과 서쪽의 행랑이다. 문묘(文廟)에 배향(配享)한 여러 현인(賢人)을 동쪽 행각(行閣)과 서쪽 행각에 나누어 모시는데, 동쪽에 있는 행각을 동무라 하고 서쪽에 있는 행각을 서무라 한다.

동서문자[同書文字]  글에 문자를 같이 함. 대전(大篆)이 사용하기에 불편하므로 진 시황 때 이사(李斯)가 소전(小篆)을 지어 문자를 통일한 것을 이른다. 이 말은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28년 조에 “도량형을 통일하고 글자도 통일했다.[器械一量 同書文字]”라 하고, 동 26년 조에도 “수레의 바퀴너비를 같게 하고, 서체의 문자를 하나로 했다.[車同軌 書同文字]”라고 보인다. 또 중용(中庸)에는 “지금 천하에 수레는 궤철이 같고, 글은 문자가 같다.[今天下 車同軌 書同文]”고 하였다.

동서반[東西班]  예전에, 문관(文官)인 동반(東班)과 무관(武官)인 서반(西班)을 아울러 이르던 말이다.

동서범차[東西汎差]  관측하는 시간에 따라 달의 시교점(視交點)과 실교점(實交點)의 사이에 생기는 시차(時差)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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