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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銅仙], 동선[洞仙], 동선[冬扇], 동선[董宣], 동선[同船], 동선[東燹]


동선[銅仙]  금동(金銅)으로 주조한 선인상(仙人像)이란 뜻으로, 전하여 불상을 가리킨다.

동선[銅仙]  금선(金仙)이라고도 하는데, 한나라 무제(武帝)가 장안(長安)의 건장궁(建章宮) 안에 세운 선인승로반(仙人承露盤)의 선인(仙人)을 가리킨다. 무제는 천상(天上)의 선로(仙露)를 받아 마시기 위해 높이 20장(丈)의 동주(銅柱)를 만들고 그 위에 선인이 받치고 있는 승로반을 세웠었다. 위(魏)나라 명제(明帝)가 이것을 탐내어 옮겨다가 위나라 궁전 앞에 세우도록 명하였는데, 이때 궁관(宮官)이 선인을 철거하여 수레에 실으려 하자, 선인이 이곳을 떠나기를 슬퍼하는 듯 눈물을 줄줄 흘렸다는 전설이 있는바, 당나라의 저명한 시인 이하(李賀)가 금동선인사한가(金銅仙人辭漢歌)를 지어 이를 노래하였다.

동선[銅仙]  동선(銅仙)은 구리로 만든 선인(仙人)이다. 한(漢)나라 효무제(孝武帝)가 승로반(承露盤)을 들고 서 있는 선인을 구리로 주조하였다. 뒤에 한나라가 망하자 조조(曹操)의 손자인 위 명제(魏明帝)가 청룡(靑龍) 1년(233) 8월에 궁관을 불러서 승로반 선인을 궁전 앞에 옮겨다 세워두라고 명하니 궁관들이 승로반 선인을 해체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위 명제는 이 승로반 선인과 같은 크기로 또 하나의 승로반 선인을 구리로 주조하여 그 옆에 세워 두었다. <緯略 卷9 承露盤銘>

동선[洞仙]  동선(洞仙)은 신선 여동빈(呂洞賓)이다. 그가 악양루(岳陽樓)에 남긴 시에 “아침에는 북해, 저녁에는 창오에 노니는데, 소매 속 청사검에 담력이 커지네.[朝遊北海暮蒼梧, 袖裏靑蛇膽氣麤.]”라는 구절이 있다. 청사검(靑蛇劍)은 보검의 이름이다. <山堂肆考 卷150>

동선[洞仙]  동선(洞仙)은 황해도 요로(要路)에 있던 역참(驛站) 가운데 하나로, 봉산군(鳳山郡) 동선령(洞仙嶺)에 위치하고 있었다.

동선[洞仙]  황해도 황주(黃州)와 봉산(鳳山) 사이에 위치한 높은 고개로 역원(驛院)이 자리하고 있었다. 고려 고종(高宗) 18년에 몽고의 살리타이[撒禮塔]가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왔을 때, 이자성(李子晟)이 목숨을 걸고 싸워 지킨 곳이다.

동선[冬扇]  겨울의 부채라는 뜻으로, 격(格)이나 철에 맞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이다. 동선하로(冬扇夏爐).

동선[董宣]  후한(後漢) 진류(陳留) 어현(圉縣) 사람으로 자는 소평(少平)이다. 벼슬은 낙양 영(洛陽令)에 이르고, 성품이 강직하고 엄정한 법 집행으로 호강(豪强)들을 억눌러 와호(臥虎)란 별명이 붙었다. 그가 낙양령(洛陽令)으로 있을 때 호양공주(湖陽公主)의 하인이 사람을 죽이고 공주의 집에 숨었는데, 동선이 공주의 행차를 길에서 막고 그 하인을 수레에서 끌어내려 쳐 죽였다. 공주가 그 사실을 광무제(光武帝)에게 하소연하자, 광무제(光武帝)가 공주에게 머리를 숙여 사과하도록 동선을 윽박질렀으나, 동선이 두 팔로 버티며 끝까지 듣지 않자 광무제(光武帝)가 마침내 강항령(強項令)을 내보내라고 명하고, 이어 상금 30만 냥을 동선에게 내리니, 동선은 그 돈을 모든 관리에게 나누어주어 사기를 북돋웠다고 한다. <後漢書 卷107 董宣列傳>

동선[董宣]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동선(董宣)은 강직하기로 유명하였는데, 그가 낙양 영(洛陽令)이 되었을 때 광무제의 누나인 호양공주(湖陽公主)의 종이 대낮에 사람을 죽이고 공주의 집에 숨어 있었으므로 관리가 체포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공주가 나들이하게 되어 그 종이 수레를 몰게 하자, 동선이 하문정(夏門亭)에서 기다렸다가 수레를 멈추게 하고 칼로 땅을 그으며 큰소리로 공주의 실책을 낱낱이 들어 책망하고 종을 꾸짖으며 끌어내려서 맨손으로 그를 때려 죽였다. 공주가 즉시 환궁하여 광무제에게 호소하니, 광무제가 크게 노여워하여 동선을 불러다 장살(杖殺)하려 하자, 동선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한마디 말을 하고 죽겠다고 청하면서 말하기를 “성덕(聖德)이 중흥(中興)하는데 종을 멋대로 놓아두어 사람을 죽이게 하니, 장차 어떻게 천하를 다스리겠습니까? 신은 장(杖)을 기다리지 않고 자살하기를 청합니다.”라고 하면서 즉시 머리를 기둥에 들이받아 피가 흘러내렸다. 광무제가 소황문(小黃門)에게 붙잡도록 하고 공주에게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라고 하자 동선이 따르지 않으므로, 억지로 조아리게 하니, 동선이 두 손을 땅에 짚고 버티면서 끝내 구부리지 않았다. 공주가 말하기를 “문숙(文叔: 광무제의 자字)이 백의(白衣)였을 때에는 도망하는 사람을 감춰 주고 죽을 사람을 숨겨주었어도 관리가 감히 문에 이르지 못하더니, 지금은 천자(天子)가 되어서도 그 위엄이 한 가지 명령도 시행할 수 없습니까?”라고 하니, 광무제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천자는 백의와 같지 않다.”라고 하면서 칙명으로 ‘강항령(強項令)’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고 돈 30만 전을 하사하였다. 이로 인하여 토호와 간악한 무리가 벌벌 떨면서 그를 와호(臥虎)라고 이름하였다. <後漢書 卷77 酷吏列傳 董宣>

동선[同船]  후한(後漢) 때 곽태(郭太)가 낙양(洛陽)에 노닐면서 고사(高士) 이응(李膺)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 이응이 그를 대단히 기특하게 여기어 서로 친구가 되었는데, 뒤에 곽태가 향리로 돌아올 적에 수천 명의 선비들이 배웅을 나왔는바, 이때 곽태가 오직 이응하고만 함께 배를 타고 건너갔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六十八>

동선[東燹]  1894년에 일어난 동학혁명(東學革命)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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