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속[同俗] 풍속을 같게 함.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팔정을 고루 행하여 음란함을 예방하고, 도덕을 일관되게 펼쳐 풍속이 같게끔 한다.[齊八政以防淫 一道德以同俗]”라는 말이 나온다.
동손[桐孫] 동손(桐孫)은 거문고를 가리킨다. 송나라 소식(蘇軾)의 차운화왕공(次韻和王鞏)에 “소리를 아는 이가 필시 없으니, 허물어진 벽에 거문고가 걸려 있네.[知音必無人, 壞壁掛桐孫.]”라고 하였다.
동손[桐孫] 동목(桐木)의 손지(孫枝). 즉 오동나무 가지에서 다시 생겨난 가지를 말한다. 북주(北周) 유신(庾信)의 시 영수(咏樹)에 “풍자를 남겨 두어 법식을 삼고, 동손은 거문고 만들 때 기다리리.[楓子留爲式, 桐孫待作琴.]”라고 하였다. 풍자(楓子)는 단풍나무 열매이다.
동손금재[桐孫琴材] 동손(桐孫)은 오동나무의 가지를 이르고, 금재(琴材)는 거문고를 만들 수 있는 좋은 재목이라는 뜻이다.
동수[董銖] 1152~1214. 송(宋)나라의 학자로, 자는 숙중(叔重)이며, 호는 반간(槃澗)이다. 주희의 문인으로, 저서에 성리주해(性理注解), 역서주(易書注)가 있다.
동수[冬狩] 겨울사냥을 이른다.
동수[童豎] 동수(童豎)는 아직 관례(冠禮)할 나이가 되지 않은 잔심부름하는 아이이다.
동수[東陲] 동방의 모퉁이.
동수[桐樹] 동수한가(桐樹韓家)를 가리킨다. 송나라 한억(韓億)은 여덟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자신의 벼슬이 참정(參政)에 이르렀고 두 아들은 재상에 이르렀다. 그의 집 문에 오동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그의 집을 동수한가(桐樹韓家)라 불렀다고 한다.
동수[銅綬] 동(銅)으로 만든 부절(符節)이라는 뜻인 동부(銅符)와 같은 말로, 지방 수령의 관인(官印)이다. 한(漢)나라 때 동호부(銅虎符)를 반으로 나누어 반쪽은 조정에 두고 나머지 반쪽은 지방관에게 주어 군사를 출동시키는 데 쓰게 하였다.
동수[銅綬] 동수(銅綬)는 구리 인장의 인끈이다. 한(漢) 나라 제도에 지방 수령은 구리 인장을 사용하였다 하여 현감이나 군수 등의 별칭으로 사용한다.
동수[東首] 동수는 의례(儀禮) 사상례(士喪禮)의 기(記)에 이르기를 “사는 병이 들면 정침에 거처하게 하는데, 북쪽 담장 아래에 동쪽으로 머리를 두고 눕힌다.[士處適寢, 寢東首于北墉下.]”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동수[東首] 예기(禮記) 상대기(喪大記)에 “병이 심하면……누웠을 때에 북쪽 창문 아래에 머리를 동쪽으로 향하게 하고 침상(寢牀)을 치우며, 설의(褻衣)를 철거하고 새 옷을 가하며, 사지를 각각 한 사람씩 붙잡으며, 남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솜을 대어서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린다.[疾病……寢東首於北牖下, 廢牀, 徹褻衣, 加新衣, 體一人, 男女改服, 屬纊, 以俟絶氣.]”라고 보이는바, 죽음에 임박함을 이른다.
동수[童壽] 동수(童壽)는 인도의 학승(學僧) 구마라습(鳩摩羅什)을 의역한 이름이다. 산스크리트어 kumārajīva의 음사로, 동수라 번역된다. 후진(後秦)의 요흥(姚興)을 따라 401년에 장안(長安)으로 와서 국빈(國賓)의 대우를 받으며 35부 348권에 달하는 방대한 경전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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