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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지역[桐藪之役], 동수타신[東首拖紳], 동수한가[桐樹韓家], 동수행[冬狩行] 


동수지역[桐藪之役]  동수(桐藪) 전투. 공산(公山) 전투라고 한다. 927년(고려 태조10)에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팔공산(八公山) 일대에서 후백제 견훤(甄萱)과 태조 왕건(王建) 사이에 벌어졌던 큰 전투. 당시 태조는 견훤의 군대에 포위당하여 사태가 매우 위급하였다. 신숭겸은 대장으로서 용모가 태조와 흡사하여 자신이 대신 죽겠다고 청하고는 태조 수레를 타고 나가 싸우다가 전사하였으며 태조는 그 덕분에 위기를 벗어났다. 참고로, 한 고조(漢高祖)가 형양(滎陽)에서 항우(項羽)에게 포위당하여 사태가 급박했을 때에 장군 기신(紀信)이 고조의 수레를 타고 고조처럼 꾸며서 거짓으로 초(楚)의 항우에게 항복하는 척하며 그 틈에 고조를 탈출하게 하고, 자신은 항우에게 잡혀서 살해당하였다.

동수타신[東首拖紳]  논어(論語) 향당(鄕黨)에 공자는 “병이 들어, 임금이 와서 살펴보시거든, 동으로 머리를 두시고, 조복(朝服)을 몸에 덮고 그 위에 큰 띠를 얹으셨다.[疾 君視 東首 加朝服拖紳]”고 하였다. 주희(朱熹)에 따르면 머리를 동쪽으로 하는 것은 생기(生氣)를 받기 위한 것이며, 병중이라 조복을 착용할 수는 없어도 평상복으로 임금을 뵐 수 없기 때문에 조복과 띠를 몸 위에 걸쳐놓은 것이다.

동수포복[東首蒲伏]  동쪽으로 머리를 두고 누움. 임금의 유지(有旨)에 공경을 표하는 뜻이다. 논어(論語) 향당(鄕黨)에 “공자께서는 병이 들었을 때에 임금이 와서 살펴보시거든, 동쪽으로 머리를 두시고 조복(朝服)을 몸에 덮고 그 위에 큰 띠를 걸치셨다.[疾, 君視, 東首, 加朝服拖紳.]”라고 하였다.

동수한가[桐樹韓家]  송나라 한억(韓億)은 벼슬이 참정(參政)에 이르렀고 강(綱)·종(綜)·강(絳)·역(繹)·유(維)·진(縝)·위(緯)·면(緬) 등 여덟 아들을 두었으며, 그중에서 강(絳)과 진(縝)은 재상에 이르렀다. 그의 집 문에 오동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그의 집을 동수한가(桐樹韓家)라 부른데서 유래한 말이다. <氏族大全 卷5 出謁更僕>

동수행[冬狩行]  당(唐)나라 대종(代宗) 광덕(廣德) 원년(763) 겨울에 두보(杜甫)가 재주(梓州)에서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이해 10월에 대종이 섬(陝) 땅으로 행차하였는데, 두보가 직접 쓴 원주(原注)에 “당시 재주 자사 장이(章彛)가 시어사를 겸하여 동천을 유수(留守)하였다.[時梓州刺史章彛 兼侍御史 留後東川]”라고 하였다. 당시에 장이가 동천에서 크게 열병식을 하자, 두보는 이 시를 지어 그가 많은 사람을 죽인 것을 풍자하고, 흉악한 안녹산(安祿山)의 반란군을 섬멸하여 왕실을 안정시킬 것을 권면하였다. <杜詩詳註 卷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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