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상찰[同安常察] 당말송초(唐末宋初)의 선승. 그가 지은 십현담(十玄談)은 선종사부록(禪宗四部錄)의 하나로 잘 알려져 있다. 십현담(十玄談)은 안찰(安察)이 지은 10수(首)의 게송으로 심인(心印)·조의(祖意)·현기(玄機)·진이(塵異)·연교(演敎)·달본(達本)·환원(還源)·회기(廻機)·전위(轉位)·일색(一色)이다.
동안석담[同安石潭] 동안(同安)과 석담(石潭). 주희(朱熹)와 율곡(栗谷) 이이(李珥)를 이른다. 주희가 복건성(福建省) 동안현(同安縣)의 주부(主簿)로 있을 적에 책을 기증받고 선생을 초빙하고 학생들을 모아 과거 공부가 아닌 진정한 인재 교육에 힘쓴 고사가 전한다. 이이가 황해도 해주(海州) 석담에 은병정사(隱屛精舍)를 짓고 강학하였는데, 이때 도학의 입문서라 할 격몽요결(擊蒙要訣)을 저술하였다. 은병정사는 나중에 소현서원(紹賢書院)으로 사액되었다. 석담(石潭)은 이이의 별호이기도 하다.
동안심법[同安心法] 동안(同安)에서 얻은 심법(心法). 심경부주(心經附註) 권3에 “오늘날 배우는 이들이 장족의 발전을 보이지 못하는 것은 마음을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일찍이 소년 시절에 동안에 있으면서 밤에 종소리를 들었는데, 하나의 종소리가 끊어지기도 전에 이 마음이 벌써 다른 곳으로 치달리는 것이었다.[嘗記少年時在同安 夜聞鍾聲 聽其一聲未絶 此心已自走作] 그리하여 이 일을 계기로 자신을 경책하고 반성하여 학문은 모름지기 전심치지(專心致志)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는 주자(朱子)의 말이 실려 있다.
동안우[董安于] 춘추시대 진(晉)나라 경(卿) 조맹(趙孟)의 가신으로, 충성심과 지략이 뛰어난 인물이다. 난리가 일어났을 때 조맹(趙孟)에게 죽기를 각오하고 계책을 건의하였으며, 진(晉)나라와 조맹에 대한 충성심으로 스스로 목매 죽었다. <春秋左氏傳 定公 13年, 14年>
동안우[董安于] 춘추시대 진(晉)나라 조맹(趙孟: 조간자趙簡子)의 가신(家臣)이다. 순인(荀寅)과 범길사(范吉射)가 난을 일으켜 조맹을 치려 하자, 조맹에게 먼저 난을 일으켜 대비하도록 권하였다. 양영부(梁嬰父)가 조맹이 먼저 난을 일으킨 죄를 물어 조씨(趙氏)를 치려고 하자 목을 매어 죽음으로써 화를 면하게 하였다. <史記 趙世家> 한비자(韓非子) 관행(觀行)에 “서문표는 성질이 급한 까닭에 부드러운 가죽을 차고 다니며 자신의 급한 성질을 눅였고, 동안우는 성질이 느린 까닭에 팽팽한 활시위를 차고 다니며 자신의 느린 성질을 다잡았다.[西門豹之性急, 故佩韋以自緩, 董安于之性緩, 故帶弦以自急.]”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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