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은 반쯤 올려야만 배가 편안하고
물은 반쯤 따라야만 그릇이 편온하다.
한신은 용략이 군주를 떨게 하여 잡혀죽었고
육기는 재주가 일세에 뛰어나 죽임을 당하였고
곽광은 권세가 군주를 핍박하여 멸족을 당하였고
석숭은 재부가 나라와 맞먹어 죽임을 당하였으니
모두가 넘치게 가짐으로써 망한 자들이다.
소강절이 말하였다.
“술은 만취할 때까지 마시지 말고, 꽃은 만개할 때까지 보지마라.”
참으로 훌륭한 말이다.
帆只揚五分, 船便安. 水只注五分, 器便穩.
범지양오분, 선편안. 수지주오분, 기편온.
如韓信以勇略震主被擒, 陸機以才名冠世見殺,
여한신이용략진주피금, 육기이재명관세견살,
霍光敗於權勢逼君, 石崇死於財賦敵國, 皆以十分取敗者也.
곽광패어권세핍군, 석숭사어재부적국, 개이십분취패자야.
康節云: “飮酒莫敎成酩酊, 看花愼勿至離披.” 旨哉言乎!
강절운: “음주막교성명정, 간화신물지리피.” 지재언호!
<채근담菜根譚/청각본淸刻本(건륭본乾隆本)/평의評議>
- 편온[便穩] 편리하고 온당함.
- 한신[韓信] 한신(韓信)은 서한(西漢) 개국공신으로 회양(淮陽) 사람이다. 처음에는 초(楚)의 항량(項梁)·항우(項羽)를 섬겨 낭중(郎中)이 되었으나 중용되지 못하였다. 뒤에 유방군(劉邦軍)에 들어왔다가 승상 소하(蕭何)의 인정을 받아 대장군에 임용되었다. 삼진(三秦)의 점령부터 해하(垓下)의 전투에 이르기까지 한군(漢軍)을 지휘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한 고조(漢高祖) 4년에 상국(相國)이 되고, 다음 해에 제왕(齊王)이 되었다. 항우가 죽고 한(漢)나라의 통일이 이룩되자 한 고조가 한신을 초왕(楚王)으로 삼았다. 한 고조 5년에 항우의 신하였던 종리매(鐘離昧)가 한신에게 의탁하였는데, 마침 어떤 사람이 한신이 모반을 꾀한다고 모함하였다. 한 고조는 진평(陳平)의 계책에 따라 운몽(雲夢)을 순수(巡狩)할 예정이므로 제후들에게 진(陳)으로 모이라고 알렸다. 한신은 자신이 죄가 없음을 보이려고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한 고조를 만나러 갔다가 체포되었고, 낙양까지 압송되었다가 사면되면서 회음후(淮陰侯)에 봉해졌다. 그 후 한 고조 10년에 한신은 진희(陳豨)와 모의하여 반란을 도모했는데, 여후(呂后)는 소하의 계책에 따라 진희가 벌써 사형에 처해졌으니 들어와서 축하의 뜻을 표하라고 한신에게 전하였다. 이에 한신이 들어가자 여후는 한신을 포박하여 장락궁(長樂宮)의 종실(鍾室)에서 목을 베어 죽이고 삼족을 멸하였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卷8 高祖本紀> <史略 卷2 西漢>
- 용략[勇略] 용기(勇氣)와 지략(知略)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 육기[陸機] 서진(西晉) 태강(太康)과 원강(元康) 연간에 활약한 문장가(文章家)로 자는 사형(士衡)이고 오군(吳郡) 오현(吳縣) 사람이다. 명문가 출신으로 조부인 육손(陸遜)은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재상을 지냈고 부친 육항(陸抗)도 군사령관을 지냈다. 어린 나이에 부친의 군대를 지휘하며 아문장(牙門將)이 되었으나 스무 살 때 오나라가 망하자 고향으로 돌아가 10년 동안 학문에만 전념했고, 이 기간에 변망론(辯亡論)을 지었다. 진무제(晉武帝) 태강(太康) 말에 아우 육운(陸雲)과 함께 낙양(洛陽)으로 나가 문재(文才)로 명성을 얻었다. 장화(張華)의 인정을 받았고, 가밀(賈謐)과 함께 문인들과 교유했다. 제왕(齊王) 사마경(司馬冏)에게 잡혀 정위(廷尉)에게 넘겨졌다가 성도왕(成都王) 사마영(司馬穎)의 도움으로 풀려난 뒤 그의 밑에서 평원내사(平原內史)가 된 그를 사람들이 육평원(陸平原)이라고 불렀다. 장사왕(長沙王) 사마의(司馬懿)를 토벌하고 후장군(後將軍)과 하북대도독(河北大都督)이 되었지만 혜제(惠帝) 때 정국이 혼란해지며 팔왕의 난[八王之亂]에 휘말려 아우와 함께 사마영에게 죽임을 당했다. 진서(晉書) 육기전(陸機傳)에서 “어려서부터 재주가 특출했고, 문장이 뛰어났다.[少有奇才, 文章冠世.]”고 하였다. 그가 지은 문부(文賦)는 문학비평방법을 논한 것으로 유명하고 그 밖의 저서로 육사형집(陸士衡集) 10권이 있다. 서진을 대표하는 문학가이기도 하거니와 그가 남긴 평원첩(平原帖)은 중국에서도 가장 이른 시기에 활동한 서법 명인의 진적으로 취급되고 있다. 문집으로 평원내사집(平原內史集)이 있다. 아우인 육운(陸雲)과 함께 이육(二陸)으로 병칭되었으며 후인들에게 태강지영(太康之英)으로 존숭되었다.
- 관세[冠世] 세상을 뒤덮다. 세상을 압도하다. 세상에서 으뜸가다. 뛰어나다. 걸출하다.
- 곽광[霍光] 곽광은 한(漢)나라 때 평양(平陽) 사람으로 곽거병(霍去病)의 이복동생이다. 한 무제(漢武帝) 때 봉거도위(奉車都尉)가 되어 20년 동안 궁궐을 출입하면서 근신하여 허물이 없었다. 소제(昭帝)가 8세로 즉위하자 유조(遺詔)를 받들어 그를 잘 보필하여 박릉후(博陵侯)가 되었다. 소제가 죽자 창읍왕(昌邑王)을 세웠으나 음란하다고 폐하고 선제(宣帝)를 세웠다. 그는 무제(武帝), 소제(昭帝), 선제(宣帝)의 세 조정을 섬겨 천하의 중망을 한 몸에 받고 식읍(食邑)이 이만호(二萬戶)에 이르렀으며, 특히 선제를 영립(迎立)하여서는 부역과 조세를 경감하는 등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그러나 그의 친인척들이 대거 조정에 포진되어 득세하였고, 선제가 즉위한 뒤에도 모든 일을 자신이 결제한 뒤에 보고하였다. 선제는 임금이 되기 이전부터 곽씨(霍氏)의 세력이 너무 큰 것을 보고 속으로 부담스럽게 생각했는데, 임금이 되어 고묘(高廟)에 참알(參謁)하러 갈 때 곽광이 참승을 하자 이 사람이 혹 역모를 꾀하지 않을까 하여 등에 까끄라기가 들어간 것처럼 몹시 불안해하였다. 곽광은 20여 년간 정권을 잡고서 친척들을 많이 기용하여, 그의 일족들이 권력을 도맡아 잡았을 정도였다. 곽광이 죽고 선제가 친정을 하면서 그 족속들을 모반하였다고 죄목으로 멸족시키게 되자, 세상 사람들은 “위엄이 임금을 두렵게 하는 자는 살려 두지 않는 법이니, 곽씨의 화는 참승에서 시작되었다.[威震主者不畜 霍氏之禍 萌於驂乘]”라고 하였다. <漢書 卷68 霍光傳>
- 석숭[石崇] 석숭은 진대(晉代) 청주(靑州) 사람으로, 원적지(原籍地)는 발해군(渤海郡)의 남피(南皮)이다. 자는 계륜(季倫), 소명(小名, 아명兒名)은 제노(齊奴)이다. 산기랑(散騎郞), 시중(侍中), 형주자사(荊州刺史), 대사농(大司農), 위위(衛尉) 등 고관을 두루 역임하였다. 형주자사(荊州刺史)로 있으면서 상인들을 겁략(劫掠)하고, 항해무역(航海貿易)으로 나라와 맞먹을 만한 거부(巨富)가 되었다. 그 성격은 호사(豪奢)하여, 하양(河陽) 금곡(金谷)에 금곡원(金谷園)이라는 호사롭고 웅장한 별장을 짓고 사치하게 살았다. 당대(當代)의 최고 갑부로서 귀척(貴戚) 왕개(王愷)・양수(羊琇) 등과 부(富)를 다투었다. 나중에 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에게 살해되었다.
- 재부[財賦] 재화(財貨)와 공부(貢賦). 재화와 부세. 금전. 국가 재정의 원천이 되는 온갖 세금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 소강절[邵康節] 소옹(邵雍)으로 송(宋)나라 범양(范陽) 사람이다. 자는 요부(堯夫), 강절(康節)은 그의 시호이다. 북해(北海) 이지재(李之才)에게 도서선천상수학(圖書先天象數學)을 수업하여 역리(易理)에 밝았고, 주역(周易)의 상수학(象數學)에 능통하였다. 유일(遺逸)로 천거되었으나 벼슬은 일체 사절하였으며, 몸소 농사지으면서 학문에 정진하였는데, 그의 학파를 백원학파(百源學派)라고 한다. 소문산(蘇門山) 백천(百泉)에서 독서하며 사는 집을 안락와(安樂窩)라 하고 자호를 안락선생(安樂先生)이라 하였다. 또한 낙양(洛陽)에 살 때에는 공중누각(空中樓閣)을 지어 자호를 무명공(無名公)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공자 사당에 종사(從祀)되고 신안백(新安伯)에 추봉(追封)되었다. 저서에는 관물편(觀物編), 어초문답(漁樵問答), 이천격양집(伊川擊壤集),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등이 있다. <宋史 卷427> <宋元學案 90>
- 막교[莫敎] ~하게 하지 말라. ~로 하여금 ~말라. 설마~란 말인가? 설마~은 아니겠지? 혹시~이 아닐까? 아마~일 것이다. ~임에 틀림없다. ~아닌 것이 없다. 모두~이다(= 莫非).
- 명정[酩酊] 만취상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술에 몹시 취함. 곤드레만드레 취함. 크게 취한 것을 가리킨다. 명정(茗艼)으로도 쓴다.
- 신물[愼勿] 부디 ~하지 마라. 삼가 ~하지 마라. 절대 ~하지 마라.
- 이피[離披] 활짝 핀 모양. 흩어지고 떨어짐. 또는 그런 모양. 분산되다. 흩어지다. 어지러이 떨어지는 모양. 쇠잔해진 모양. 흔들리는 모양. 두보(杜甫)의 시 미피서남대(渼陂西南臺)에 “갈대숲이 갈라지니, 하늘과 물이 다 함께 길구나.[蒹葭離披去 天水相與永]”라고 하였고, 이상은(李商隱)의 시 칠월이십구일숭양댁연작(七月二十九日崇讓宅宴作)에 “인간 세상은 본디 모이고 흩어짐이 많은데, 붉은 연꽃은 어이하여 또 활짝 피는가.[人世本來多聚散 紅蕖何事亦離披]”라고 하였다. 이피(离披).
【譯文】 五分安穩. 十分潰敗.
帆只要揚起一半, 船就能平安. 水只要像注入五分, 容器就能穩定. 比如韓信因爲勇略俱備震撼君主被擒拿, 陸機因爲才華名望卓冠當世被殺害, 霍光失敗於權威勢力威逼君主, 石崇慘死於財產賦稅匹敵國家, 都是用了十分獲取失敗的人了. 邵雍說 : “飮用美酒不要讓人成爲酩酊大醉, 欣賞鮮花小心不要以至分離凋敝.” 眞是微旨諍言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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