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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옥류천[東陽玉流泉], 동양이대[東陽移帶], 동양인흡[東陽仁洽], 동양태수[東陽太守]


동양역[僮陽驛]  중국 강소성 술양현(沭陽縣)에 있었던 역참이다.

동양옥류천[東陽玉流泉]  동양(東陽)은 황해도 평산군(平山郡)의 다른 이름이다. 조선(朝鮮) 시대 이해응(李海應)의 계산기정(薊山紀程)에 실린 옥유영암(玉乳靈巖) 시서(詩序)를 보면, 총수(蔥秀)의 정면에 솟아 있는 석벽(石壁)에 옥류천(玉溜泉), 진주천(珍珠泉), 청천(聽泉), 선탑(仙榻), 옥유영암(玉乳靈巖)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고 하였다.

동양왕비[東陽王丕]  동양왕(東陽王) 탁발비(拓跋丕).

동양이대[東陽移帶]  동양(東陽)은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심약(沈約)을 가리킨다. 그가 동양태수(東陽太守)로 좌천된 뒤 친하게 지내던 벗인 서면(徐勉)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의 병세를 말하면서 “뒤의 차도(差度)가 앞의 차도만 못하고 뒤의 위독함이 앞의 위독함보다 심하여 허리가 줄었으므로 백 일에 수십 일은 늘 혁대(革帶)의 구멍을 옮겨야 합니다.[後差不及前差, 後劇必甚前劇. 百日數旬, 革帶常應移孔.]”라고 하였다. <梁書 卷13 沈約列傳>

동양인흡[東陽仁洽]  양(梁)나라 석천(席闡)이 외직으로 나가 동양 태수(東陽太守)가 되었을 때 군에서 유능하다는 명성이 있었다. 매년 동지가 되면 감옥 안의 죄수들에게 돌아올 날짜를 알려주고 풀어주었는데, 모두 약속한 날짜가 되면 돌아왔다고 한다. <古今事文類聚 前集 卷12 放囚>

동양진[動梁塵]  양진(梁塵)은 들보 위의 티끌을 이른다. 옛날 노(魯) 나라의 우공(虞公)은 소리를 발하면 매우 청월(淸越)하여 노래하면 들보 위에 있는 티끌이 움직였다 한다.

동양태수[東陽太守]  남조 양(南朝梁)의 시인 심약(沈約)을 가리킨다. 태수로 나간 지 1백여 일 만에 허리띠를 몇 번이나 다시 졸라맬 정도로[革帶常應移孔] 몸이 수척해졌다고 한다. <梁書 沈約列傳>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후 일제에 의해 사형언도를 받고, 감옥 안에서 집필하기 시작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였다. 한국·청국·일본의 동양 3국이 협력해서 서양 세력의 침략을 방어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동양 3국이 서로 화합해 개화 진보하면서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해 진력하자는 내용이다.

동양허씨[東陽許氏]  허겸(許謙)을 말한다. 원(元)나라 금화인(金華人)으로, 자는 익지(益之), 호는 백운산인(白雲山人), 시호는 문의(文懿)이다. 김이상(金履祥)의 제자이고, 송나라가 망하자 학문에만 전념하여 박학하다는 칭송을 들었다. 동양(東陽)의 팔화산(八華山)에서 기거하며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다. 저서에 독서전총설(讀書傳叢說), 시명물초(詩名物鈔), 백운집(白雲集)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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