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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어허리[童於虛里], 동언이신[同言而信], 동엄순월[動淹旬月], 동업상구[同業相仇]


동어약불지[銅魚躍拂池]  지(池)란 유거(柳車), 즉 상여를 만들 때 대를 엮어서 대롱을 만들고 푸른 천을 올려놓아 덮개의 삼면 모퉁이 끝에 걸어서 궁실(宮室)의 낙숫물 받는 것을 형상화한 것을 말한다. 구리로 물고기를 만들어서 지(池) 아래 달면, 수레가 떠날 때 물고기가 뛰놀듯 흔들리면서 지(池)까지 닿게 된다. <禮記 喪大記>

동어허리[童於虛里]  동맹가첩목아(童猛哥帖木兒)의 이복동생이다. 1437년(세종19) 귀순한 이후 오랫동안 회령(會寧) 성안에 살면서 다른 마음을 품지 않고 복종하였기 때문에, 그가 죽자 세종은 도만호(都萬戶)를 하사하고 예관(禮官)을 보내어 제사 지내고 부의(賻儀)도 전해 주도록 하였다. 1455년(세조1)에는 원종공신(原從功臣) 3등에 녹훈되었다.

동언[董偃]  동언(董偃)은 전한 사람으로, 모친과 함께 구슬을 팔러 한 무제의 고모인 관도공주(館陶公主) 집안에 들어갔다가 과부가 된 관도공주가 동언의 용모를 보고 총애하여 그 길로 궁중에 머물게 되었다. 후에 한 무제의 총애까지 얻었는데, 동방삭으로부터 음란의 괴수로 지목되어 총애를 잃고 30세에 죽었다.

동언[董偃]  동언(董偃)은 한나라 무제 때 사람으로, 그의 어머니와 함께 구슬을 팔아서 먹고살던 자인데, 일찍이 어머니를 통하여 무제의 고모인 관도공주(館陶公主)를 섬기게 되었으며, 관도공주를 통하여 무제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무제가 궁전에서 잔치를 벌이고 동언을 부르자, 동방삭이 섬돌 아래에서 창을 들고 서 있다가 나와서 동언이 지은 세 가지 죄목을 들어 간하였다. 그 후 동언은 황제의 총애를 차츰 잃어 서른 살에 죽었다 한다. <漢書 卷65 東方朔傳>

동언[董偃]  동언(董偃)은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미소년이다. 처음에는 그의 어머니와 함께 구슬을 팔아서 먹고살았는데, 일찍이 어머니를 통하여 무제의 고모인 관도공주(館陶公主)를 섬기게 되었으며, 관도공주를 통하여 무제를 만나 보자, 무제가 궁녀들보다도 더 총애하면서 주인옹(主人翁)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기까지 하였다. 무제가 황제의 정실(正室)인 선실(宣室)에서 동언을 불러 술을 마시자, 동방삭(東方朔)이 무제에게 동언을 만나지 말라고 간언하였다. 무제는 동방삭에게 충언을 하였다고 하면서 황금을 하사하였으나, 몰래 동언을 북궁(北宮)에서 만났다. <漢書 卷65 東方朔傳>

동언[同焉]  동언(同焉)은 어리석은 모양으로 동연(侗然)과 같다.

동언이신 신재언전 동령이행 성재령외[同言而信 信在言前 同令而行 誠在令外]  똑같이 말을 하는데도 믿어주는 것은 믿음이 말하기 이전에 있기 때문이요, 똑같이 명령을 하는데도 행해지는 것은 정성이 명령 밖에 있기 때문임. 문자(文子) 정성(精誠)에 “같은 말을 하면서도 믿게 하는 것은 믿음이 말에 앞서 존재하기 때문이며 같은 명령을 내리면서도 실행하게 하는 것은 성실(진실)이 명령 이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同言而信, 信在言前. 同令而行, 誠在令外.]”라고 하였다.

동엄순월[動淹旬月]  걸핏하면 열흘이나 한 달이 경과한다는 뜻으로, 쉽게 결정을 짓지 못하고 시일을 오래 끎을 이른다.

동업상구[同業相仇]  동업자는 이해관계에 따라서는 서로 원수가 되기 쉬움. 같은 업은 이해(利害) 관계(關係)로 인(因)하여 서로 원수(怨讐)가 되기 쉬움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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