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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연[洞然], 동연보[東硯譜], 동연지심[同然之心], 동연팔황 개재아달[洞然八荒 皆在我闥]


동여금수거 족여만물병[同與禽獸居 族與萬物竝]  짐승들과 함께 살면서 무리 지어 만물과 나란히 살았음. 사람과 짐승, 사람과 만물의 차별이 없었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제9편 마제(馬蹄)에 “지덕의 시대에는 짐승들과 함께 살면서 무리 지어 만물과 나란히 살았으니 어찌 君子와 小人의 차별을 알았겠는가.[夫至德之世, 同與禽獸居, 族與萬物竝, 惡乎知君子小人哉.]”라고 한 데서 보인다.

동여자하인[同余者何人]  북송의 학자 주돈이(周敦頤)가 연꽃을 군자에 비겨 그의 집 방당에 가득 심어놓고 지은 글 애련설(愛蓮說)에 “아! 국화를 사랑한 이는 도잠 이후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거니와 연꽃을 사랑하는 이는 나와 같을 자가 그 누구일 것인가.[噫! 菊之愛, 陶後鮮有聞, 蓮之愛, 同余者何人.]”라고 하였다.

동여진[東女眞]  고려 시대에 동북 지방에 거주하던 여진족을 일컫던 말로, 갈라전(曷懶甸) 지방에 있는 여진(女眞)을 이른다. 달리 동북여진(東北女眞), 동번(東蕃)으로도 불렸다. 동여진과 상대하여 지금의 평안도 지역에 있던 여진족은 서여진(西女眞)이라고 불렀다. 고려와는 이미 정종 3년(948)부터 교섭이 있었지만 현종 이후 왕래가 잦았다. 그들이 고려에 오는 목적은 진공(進貢), 내조(來朝) 등이었으며, 그들의 생활필수품이 부족할 때에는 해적이 되어 고려의 동해안과 일본의 서남해안을 노략질하였다.

동역[董役]  역사를 감독함. 일을 감독함.

동연[同然]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 8장에 “좋아하고 미워함이 사람과 서로 가깝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똑같이 여기는 바를 얻음을 말한다.[好惡與人相近, 言得人心之所同然也.]”라고 한 데 나오는 말이다.

동연[洞然]  물속에 돌을 던졌을 때 나는 첨벙 소리의 의성어이다.

동연보[東硯譜]  실제의 책이 확인되지는 않으나 조선의 벼루를 주제로 한 유득공(柳得恭)의 저술로 추측된다. 유득공의 경도잡지(京都雜誌) 풍속(風俗)에서도 벼루의 재료로 남포(藍浦)의 오석연(烏石硯), 위원(渭原)의 자석연(紫石硯) 등을 언급하고 있다.

동연지심[同然之心]  다 같이 지닌 마음.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올바른 마음으로서, 그 마음속에는 인·의·예·지(仁義禮智)가 갖추어져 있다.

동연추[董硏秋]  동연추(董硏秋)는 동문환(董文渙)으로, 연추는 그의 호이고, 자는 요장(堯章)·세장(世章)이다. 진사 급제 후 한림검토(翰林檢討) 등을 거쳐 외직으로 나가 감숙성(甘肅省)의 감량병비도(甘凉兵備道) 등을 지냈으며, 저서로 연초산방시집(硯樵山房詩集), 연초산방문존(硯樵山房文存) 등이 있다.

동연팔황 개재아달[洞然八荒 皆在我闥]  송나라 유학자 여대림(呂大臨)의 극기명(克己銘)에 “싸우기도 하고 회유하기도 하여 사욕을 이기고 욕심을 막으니, 옛날에는 원수와 적이었으나 지금에는 신하와 종이 되었도다. 사욕을 이기지 못했을 때에는 내 집안에서 군색하여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다투었으니, 그 나머지를 어찌 취하랴. 또한 사욕을 이기면 황황하게 사방으로 통하여, 환하게 팔황이 모두 내 문지방 안에 있게 되리라.[且戰且徠, 勝私窒慾, 昔爲寇讐, 今則臣僕. 方其未克, 窘吾室廬, 婦姑勃磎, 安取厥餘. 亦旣克之, 皇皇四達, 洞然八荒, 皆在我闥.]”라고 하였다. <金文靖集 卷8>

동연혼박절하적[洞然渾樸絶瑕謫]  깨끗한 박옥(璞玉)처럼 결점 하나 없음. 동연(洞然)은 깨끗한 모양이다. 혼박(渾樸)은 순박함이다. 절(絶)은 전무함이고, 하적(瑕謫)은 결점이다.

동연회[同蓮會]  같은 해 연방(蓮榜)에 급제한 사람들의 계회(契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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