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오로회[東吳鱸鱠] 동오(東吳)의 농어회. 진(晉)나라 때 문인 장한(張翰)이 일찍이 낙양(洛陽)에 들어가 동조연(東曹掾)으로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자기 고향인 강동(江東) 오중(吳中)의 줄나물[菰菜]과 순챗국[蓴羹]과 농어회[鱸鱠]를 생각하면서 “인생은 자기 뜻에 맞게 사는 것이 귀중하거늘, 어찌 수천 리 타관에서 벼슬하여 명작을 구할 수 있겠는가.[人生貴得適志 何能羈宦數千里 以要名爵乎]”라 하고, 마침내 수레를 명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던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92 文苑列傳 張翰> 동오노회(東吳鱸鱠).
동오릉[東五陵] 현재의 동구릉 국내에 있는 문종(文宗)과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능인 현릉(顯陵), 선조(宣祖)와 의인왕후(懿仁王后)·인목왕후(仁穆王后)의 능인 목릉(穆陵), 인조의 비 장렬왕후(莊烈王后)의 능인 휘릉(徽陵), 현종(顯宗)과 명성왕후(明聖王后)의 능인 숭릉(崇陵), 경종의 비 단의왕후(端懿王后)의 능인 혜릉(惠陵)을 가리킨다.
동오만리[東吳萬里] 중국 삼국 시대 오(吳)나라 지역인데, 그곳이 양자강 동쪽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대개 강소성(江蘇省)과 절강성(浙江省) 지역이 여기에 해당된다. 두보(杜甫)의 초당 부근에 합강정(合江亭)이 있었는데 동오의 배들이 왕래하며 이곳에 정박했고, 그 서쪽에 만리교(萬里橋)가 있었다. 만리교는 촉한(蜀漢)의 비위(費褘)가 사신이 되어 오나라로 갈 때 “만 리 여행이 이 다리에서 시작된다.[萬里之行, 始于此橋.]”라고 말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동오상구 여시고언[同惡相求 如市賈焉] 같은 것을 미워하고 같은 것을 소망함이 마치 장사치가 이익(利益)을 구하듯이 한다는 말이다. <史記 楚世家>
동오상조[同惡相助] 사기열전(史記列傳) 권106 오왕비열전(吳王濞列傳)에 “미움을 같이하는 자는 서로 돕고, 기호가 같은 자는 서로 붙들어 머무르며, 뜻을 같이하는 자는 함께 이루며, 하고자 하는 일이 같은 자는 서로 같이 달려가며, 이익을 같이하는 자는 서로 생사를 같이한다.[同惡相助, 同好相留, 同情相成, 同欲相趨, 同利相死.]”라고 하였다.
동오상휼[同惡相恤] 호오(好惡)를 함께하여 서로 구휼(救恤)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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