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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오소공[童烏邵公], 동오순로[東吳蓴鱸], 동오절염[東吳絶艶], 동오팔영[東吳八詠]


동오소공[童烏邵公]  동오(童烏)는 한(漢)나라 양웅(揚雄)의 아들이며, 소공(邵公)은 정호(程顥)의 둘째 아들인 정단각(程端慤)의 어릴 적 이름이다. 동오는 양웅이 태현경(太玄經)을 지을 당시 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함께 내용을 토론할 정도로 자질이 뛰어났으나 요절하였으며, 소공 역시 재주가 뛰어났으나 6세의 어린 나이로 요절하였다. <法言 問神> <二程文集 卷4 程邵公墓誌>

동오순로[東吳蓴鱸]  진(晉)나라 때 문인 장한(張翰)이 일찍이 낙양(洛陽)에 들어가 동조연(東曹掾)으로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자기 고향인 강동(江東) 오중(吳中)의 순챗국[蓴羹]과 농어회[鱸膾]를 생각하면서 “인생은 자기 뜻에 맞게 사는 것이 귀중하거늘, 어찌 수천 리 타관에서 벼슬하여 명작을 구할 수 있겠는가.[人生貴得適志 何能羈宦數千里 以要名爵乎]”라 하고, 마침내 수레를 명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晉書 卷92 文苑列傳 張翰>

동오절염 남국가인[東吳絶艶 南國佳人]  동오(東吳)의 절색과 남국(南國)의 가인(佳人). 오(吳) 나라와 초(楚) 나라에 미인들이 많았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동오춘석[冬隩春析]  서경(書經) 우서(虞書) 요전(堯典)에 “알맞은 중춘(仲春)이 되게 하면 백성들은 흩어져 살고, 조수는 새끼를 낳고 교미한다.[以殷仲春 厥民析 鳥獸孳尾]”라는 내용과 “바른 중동(仲冬)이 되게 하면 백성들은 아랫목에 있고, 조수는 가는 털이 난다.[以正仲冬 厥民隩 鳥獸氄毛]”라는 내용이 보인다.

동오팔영[東吳八詠]  동오팔영(東吳八詠)은 심휴문(沈休文)이 지은 것이다. 그리고 송복고(宋復古)가 팔경(八景)을 그림으로 그렸다. 심휴문은 양(梁)나라 때 문장가인 심약(沈約)으로, 휴문은 그의 자이다. 송복고는 송(宋)나라 때 화가인 송적(宋迪)으로, 복고는 그의 자이다. 동오팔영은 심약이 동양 태수(東陽太守)로 있으면서 원창루(元暢樓)를 세우고 아울러 팔영시(八詠詩)를 지은 데서 온 말인데, 그 제목은 바로 등대망추월(登臺望秋月), 회포림동풍(會圃臨東風), 세모민쇠초(歲暮愍衰草), 상래비락동(霜來悲落桐), 석행문야학(夕行聞夜鶴), 신정청효홍(晨征聽曉鴻), 해패거조시(解佩去朝市), 피갈수산동(被褐守山東)이다. 그리고 송적이 그린 팔경도(八景圖)는 여창조(呂昌朝)가 소장한 것으로, 그 제목은 곧 동정만애(洞庭晚靄), 여부추운(廬阜秋雲), 평전안락(平田雁落), 활포범귀(闊浦帆歸), 우암강촌(雨暗江村), 설장산록(雪藏山麓), 천암고백(泉巖古柏), 석안고송(石岸孤松)이다. 소식(蘇軾)이 가주 태수(嘉州太守)로 나가는 여창조를 보낸 시에 “삼도의 꿈으로 익주 태수 되는 건 부럽지 않고, 팔영을 가지고 동오 팔영 잇기를 바라노라.[不羨三刀夢蜀都 聊將八詠繼東吳]”라고 하였다. <東坡集 卷31>

동오회계[東吳會稽]  중국 강소성(江蘇省)에 있는 지명(地名)으로 진(秦)대에는 회계(會稽), 한(漢)대에는 오군(吳郡)을 두었는데, 오군을 별칭 동오(東吳)라 하였다. 옛사람들이 대개 거리가 멀다는 뜻으로 인용하여, 두보(杜甫)의 절구(絶句)에 “창문으로는 서쪽 준령의 천년설이 보이고, 문밖엔 동쪽 오나라로 만리 가는 배 머물러 있네.[窓含西嶺千秋雪, 門泊東吳萬里船.]”라고 하였고, 요곡(姚鵠)의 송인귀오시(送人歸吳詩)에는 “東吳與上國萬里路超超”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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