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올[童兀] 산에 나무나 풀이 전혀 없음을 이른다. 민둥산. 동탁(童濯).
동와[洞渦] 역참(驛站) 이름으로 동과역(同戈驛)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태원시(太原市) 청서현(淸徐縣) 왕답향(王答鄕) 동과참촌(同戈站村)이다.
동와[㼧瓦] 정사(亭榭)나 전각(殿閣)에 사용하는 수키와이다.
동완[東莞] 송대(宋代) 현(縣)의 이름으로 지금의 광동성(廣東省) 심수시(深圳市)에 있었다. 진(晉)나라 때의 보안현(寶安縣)을 당(唐)나라 때에 동완현(東莞縣)으로 개칭하였다.
동완장봉세[東莞臧逢世] 장봉세(臧逢世)의 사적(事迹)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동완군(東莞郡)은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기수현(沂水縣) 지역에 있었다. 진서(晉書) 지리지(地理志)에 “서주(徐州)의 동완군(東莞郡)은 태강(太康) 연간에 설치되었으며, 동완현(東莞縣)은 옛날의 노운읍(魯鄆邑)이다.”라고 하였다.
동완진건[東莞陳建] 동완(東莞) 진건(陳建)은 명(明)나라 때 학자로 광동(廣東) 동완현(東莞縣) 출신이며 자는 정조(廷肇), 호는 청란(淸瀾)이다. 양신 지현(陽信知縣)을 지내고 노모 봉양을 이유로 은거하였다. 육구연과 왕수인의 심학(心學)을 배격하고 주희의 이학(理學)을 옹호하였다. 저서에 학부통변(學蔀通辨), 남우록(濫竽錄) 등이 있다.
동왕[東王] 신화 속의 신선인 동왕공(東王公)으로, 남자 신선의 명부(名簿)를 관장하며 서왕모(西王母)와 상대하여 일컬어진다.
동왕공[東王公] 신화 속의 신선으로, 남자 신선의 명부(名簿)를 관장하며 서왕모(西王母)와 상대하여 일컫는다. 또 동왕공이 동황산(東荒山)에서 항상 옥녀 한 사람과 투호놀이를 하였는데, 제대로 적중하면 하늘이 찬탄을 하고 적중하지 못할 때에는 하늘이 크게 웃는 바람에 번개가 쳤다는 전설이 있다. <神異經 東荒經>
동왕기[童汪踦] 동기(童踦). 동자(童子) 왕기(汪踦). 제군(齊軍)이 노(魯)나라로 쳐들어와서 노군(魯軍)과 교전할 때에 동자(童子) 왕기(汪踦)가 국가를 위해 출전(出戰)하여 전사(戰死)하였다. 예기(禮記) 단궁 하(檀弓下)에 “노나라와 제나라가 낭(郎) 땅에서 싸울 적에 공숙 우인(公叔禺人)이 상장(喪杖)을 메고 성 안으로 들어와 쉬고 있는 자를 만나 말하기를 ‘국가에서 부역시킴이 비록 백성들을 병들게 하고 세금을 부담시킴이 비록 무거우나, 군자가 국가를 위하여 도모하지 못하고 사가 죽지 못한다면 옳지 않으니, 내가 이미 책망하는 말을 하였다.’라고 하고는, 그 이웃 마을의 동자(童子) 왕기(汪踦)와 함께 싸움터로 달려가서 싸우다가 모두 죽었다. 노나라 사람이 동자 왕기를 상례(殤禮)로 장례하지 않고자 해서 중니(공자)에게 물었는데, 중니께서 말씀하기를 ‘창과 방패를 잡고서 사직을 보호하였으니, 비록 상례로 장례하지 않으려 한다 할지라도 옳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戰于郞, 公叔禺人遇負杖入保者息, 曰: ‘使之雖病也, 任之雖重也, 君子不能爲謀也, 士弗能死也, 不可. 我則旣言矣.’ 與其隣重(童)汪踦往, 皆死焉. 魯人欲勿殤重汪踦, 問於仲尼. 仲尼曰: ‘能執干戈以衛社稷, 雖欲勿殤也, 不亦可乎!’]”라고 한 데서 보인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애공(哀公) 11년에도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