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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東原], 동원[東園], 동원[東垣], 동원[董源], 동원[東院], 동원[東轅]


동원[東原]  강릉의 옛 지명이다. 신라 때 동원경(東原京)이라 불리었다.

동원[東園]  과실나무나 채소를 심는 뒤란이나 밭을 가리킨다. 이백(李白)의 시 고풍47(古風47)에 “뒤꼍에 복사꽃 활짝 피어서, 대낮에 함박웃음 자랑하고 있네.[桃花開東園, 含笑誇白日.]라고 하였다.

동원[東園]  북송(北宋) 때 시창언(施昌言)이란 사람이 조성한 정원이다. 구양수(歐陽脩)가 진주동원기(眞州東園記)를 짓고, 채양(蔡襄)이 글씨를 써 원(園), 기(記), 서(書) 삼절(三絶)이라고 하였다. 강소성(江蘇省) 의정(儀征)에 있다.

동원[東園]  한(漢)나라 때 장례용품을 만들던 부서로, 한대에 제왕(諸王)과 공신 등이 죽으면 동원의 비기를 하사하였다고 한다. <漢書 卷81 孔光傳>

동원[東園]  한(漢)나라 때 관서(官署)로 능묘(陵墓) 안의 기물(器物)의 제작을 관장하였으며 소부(少府)에 소속하였다. 왕공 귀족의 무덤에 쓰이는 기물을 만들어 제공하는 일을 맡았다.

동원[東垣]  조(趙)나라의 읍(邑)이었다.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정정현(正定縣)이다. 하북성의 성도였던 석가장시(石家庄市) 경내에 있었던 고을로 중산국(中山國) 령이었다.

동원[東垣]  이고(李杲)의 호이다. 이고의 자(字)는 명지(明之)이며, 호(號)는 동원노인(東垣老人)이어서 이 동원(李東垣)이라고도 부른다. 유완소나 장종정이 몸 밖의 육기(六氣)에 주목한 것과 달리, 이고는 질병이 내상(內傷) 즉 몸 내부 정기(正氣)의 손상이라고 이해하였다. 특히 <황제내경소문(黃帝內經素問)>에 기반하여 인체의 정기는 비위(脾胃)의 원기(元氣)가 주(主)가 되므로, 비위지기(脾胃之氣)의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인식하였다. 비위지기의 승강(升降)이 실상(失常)하면 질병이 발생한다는 주장이었다. 내상의 원인으로는 잘못된 음식[飮食不節], 과도한 노동[勞役過度], 극단적인 감정[精神刺戟] 등을 거론하였다. 주로 비위지기를 보(補)하는 것으로 치료하였으므로 이고를 흔히 보토파(補土派)라고 부른다. 그는 내외상변혹론(內外傷辨惑論), 비위론(脾胃論), 난실비장(蘭室秘藏), 용약법상(用藥法象)을 썼다. 전하여 동원(東垣)은 의원(醫員)을 가리킨다.

동원[東垣]  중국 금(金)나라의 의학자. 본명은 이고(李杲)이며, 동원(東垣)은 그의 호(號)이다. 자는 명지(明之), 호는 동원노인(東垣老人)이며, 당시 진정(眞定) 사람이다. 모친이 병에 걸렸으나 많은 의사들이 치료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스스로 의학을 학습하였으며, 장원소(張元素)의 의학 사상을 따랐다. 병을 치료함에 있어서 비위(脾胃)를 가장 중요시하였으며, 상한옹저안목병(傷寒癰疽眼目病)을 더욱 전문적으로 잘 하였다. 저서로는 용약법상(用藥法象), 추명소문난경(推明素問難經), 본초맥결(本草脉訣), 잡병방론(雜病方論), 의학발명(醫學發明), 내외상변혹론(內外傷辨惑論), 비위론(脾胃論), 난실비장(蘭室秘藏) 등이 있고, 또 최진인맥결(崔眞人脉訣), 탕액본초(湯液本草), 격치여론(格致餘論), 국방발휘(局方發揮), 외과정의(外科精義), 의경소회집(醫經溯洄集) 등 여러 서적에 대해 주석을 달았다. 금원사대가(金元四大家)의 한 사람이다.

동원[董源]  남당(南唐)사람. 자는 북원(北苑). 그림을 잘 그렸고 특히 산수화(山水畫)에 능하였다. <十國春秋>

동원[東院]  당(唐) 나라 때 고승(高僧) 종심 선사(從諗禪師)가 일찍이 조주(趙州)의 관음원(觀音院)에 거주했는데, 이곳을 일명 동원(東院)이라고도 칭했던 데서, 전하여 고승의 처소를 가리킨다.

동원[東轅]  원(轅)은 군영(軍營)의 원문(轅門)을 뜻하는 말로, 군사를 거느리고 동쪽으로 나가거나 혹은 동쪽 지방을 지킨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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