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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공[東園公], 동원금환[東垣金環], 동원노인[東垣老人], 동원부기[東園副器]


동원공[東園公]  진(秦)나라 말기에 난세를 피하여 산서성 상산(商山)에 숨었던 상산사호(商山四皓)의 한 사람이다. 성은 유(庾), 자(字)는 선명(宣明)이다. 동원공(東園公)과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甪里先生) 등 상산(商山)의 사호(四皓)가 진(秦)의 난을 피하여 남전산(藍田山)에 들어가 은거하면서 한 고조(漢高祖)의 초빙에도 응하지 않고 이 자지가(紫芝歌)를 불렀다고 한다. 채지조(採芝操)라고도 한다. <高士傳 卷上 四皓>

동원금환[東垣金環]  서진(西晉)의 정남장군(征南將軍) 양호(羊祜)가 다섯 살 적에 유모(乳母)로 하여금 가지고 놀던 금가락지[金環]를 가져 오게 하니, 유모가 말하기를 “너는 전에 이런 물건이 없었다.”라고 하였다. 양호가 즉시 이웃사람인 이씨(李氏)의 동쪽 담장[東垣] 아래에 있는 뽕나무 속에 나아가서 더듬어 찾아내니, 주인이 놀라며 말하기를 “이는 나의 죽은 아들이 잃어버렸던 물건이다.”라고 경악해 마지않았다. 유모가 그 연유를 자세히 말하니, 당시 사람들도 이씨의 아들이 양호로 환생(還生)했다고 믿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晉書 卷34 羊祜傳>

동원기[東園器]  동원기는 즉 동원비기(東園秘器)의 준말로, 한(漢) 나라 때에 동원(東園)이란 관서(官署)에서 제작한 최상품의 상장 도구(喪葬道具)를 말하는데, 이것은 주로 제왕(諸王)이나 공훈이 큰 대신(大臣)이 죽었을 때 하사하던 것이다. <晉書 宣帝紀>

동원노인[東垣老人]  중국 금(金)나라에서 활동한 이고(李杲)를 가리킨다. 진정(眞定) 출신으로, 자(字)는 명지(明之)이고 호(號)는 동원(東垣)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경사(經史)에 밝았다. 특히 의약(醫藥)을 좋아하였으며, 장원소(張元素)의 의업을 전수받았다. 금원사대가(金元四大家)의 한 사람이다.

동원도[董元度]  자는 곡강(曲江), 호는 기려(寄廬)이며 평원현(平原縣) 동로구촌(董路口村) 사람이다. 1752년(건륭乾隆 17)에 진사가 되고, 한림원으로 들어갔다. 이후 강서정원현 지현(江西定遠縣知縣), 동창부 교수(東昌府敎授) 등을 지냈다.

동원방[東垣方]  금(金)나라 말기 원(元)나라 초기의 의학가(醫學家)인 이고(李杲)의 처방을 말한다. 동원은 그의 호이다. 이고는 장원소(張元素)를 사사하여 상한(傷寒), 종기, 눈병을 잘 치료하였고, 보중익기(補中益氣)와 승양익위(升陽益胃) 부문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세상에서 온보파(溫補派)로 칭하며, 금원(金元) 시대 의학 사대가의 한 사람이다. 저술로는 내외상변혹론(內外傷辨惑論), 비위론(脾胃論), 난실비장(蘭室秘藏) 등이 있다. <中國歷代人名大辭典, 上海古籍出版社>

동원부기[東園副器]  동원(東園)은 본디 한(漢)나라의 관서(官署) 이름으로, 관곽(棺槨)을 비롯한 능묘(陵墓)의 기물과 장례 물품을 제조하고 공급하던 일을 관장하던 곳이다. 조선에서는 장생전(長生殿)을 가리키고, 부기(副器)는 왕실이나 대신에게 지급하는 관각인 비기(秘器)를 만들고 남은 판재(板材)를 말한다.

동원부판[東園副板]  동원(東園)의 부판(副板). 동원(東園)은 진한(秦漢) 시대에 관곽(棺槨) 등 무덤에 쓸 기물(器物)을 만들어 공급하던 관청 이름이며, 거기서 만든 관곽을 동원비기(東園祕器)라 하였다. 조선에서의 장생전(長生殿)을 말한다. 부판은 궁궐에서 쓰이는 관곽(棺槨)을 만들고 난 나머지 부재(副材)로 만든 판재(板材)를 이른다. 장생전(長生殿)에서 관곽과 함께 보관하였다가 필요한 때에 썼다. 궁궐에서 쓰기 위해 보관하는 관곽을 특히 동원비기(東園秘器)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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