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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비기[東園秘器], 동원비장[東垣秘藏], 동원시효방[東垣試效方], 동원온명[東園溫明]


동원비기[東園秘器]  동원(東園)은 진한(秦漢)시대에 관곽(棺槨) 등 장례와 무덤에 쓸 기물(器物)을 만들어 공급하던 관청이고, 거기서 만든 관곽을 동원비기(東園秘器)라 하였는데, 궁궐에서 사용하는 장례 물품을 말한다. 조선에서는 장생전(長生殿)이 이 일을 담당하였다.

동원비기[東園秘器]  동원(東園)은 한(漢) 나라 때 장구(葬具)를 만들던 관서(官署)의 이름이고, 비기(秘器)는 곧 장사(葬事) 때 쓰는 관(棺) 이하 여러 가지 장구를 가리킨다. 한 나라 때 특히 공신(功臣)·대신(大臣) 등이 죽었을 적에는 관례적으로 이 동원의 비기를 하사했다고 한다.

동원비장[東垣秘藏]  금(金)나라 이고(李杲)가 편찬하고, 후대인 1336년경에 간행한 난실비장(蘭室秘藏)을 가리킨다. 이고의 호(號)가 동원노인(東垣老人)이어서, 흔히 이고를 이동원(李東垣)이라고도 부른다.

동원숙자환[東垣叔子環]  아들이 어려서 일찍 죽은 슬픔을 말한다. 숙자(叔子)는 양호의 자(字)이다. 서진(西晉)의 정남장군(征南將軍) 양호(羊祜)가 다섯 살 되었을 적에, 유모(乳母)로 하여금 가지고 놀던 금가락지[金環]를 가져 오게 하니, 유모가 말하기를 “너는 전에 이런 물건이 없었다.”라고 하였다. 이에 양호가 이웃에 사는 이씨(李氏)의 동쪽 담 뽕나무 밑으로 곧장 가서 금환(金環)을 찾아내어 가지고 놀았는데, 이씨 집에서 이것을 보고는 “어려서 죽은 내 아들이 가지고 놀다가 잃어버렸던 물건이다.”라고 경악해 마지않았으며, 당시 사람들도 이씨의 아들이 양호로 환생(還生)했다고 믿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晉書 卷34 羊祜傳> 숙자(叔子)는 양호의 자(字)이다.

동원시효방[東垣試效方]  중국 금(金)나라 이고(李杲)가 1266년에 편찬한 9권짜리 의서로서 동원선생시효방(東垣先生試效方) 또는 동원효험방(東垣效驗方)라고도 부른다. 총 24문(門)에 걸쳐 약상(藥象)을 비롯한 각종 병증을 다루고 있다.

동원온명[東園溫明]  동원(東園)은 한(漢) 나라 때 소부(少府)에 소속된 역소(役所)의 이름인데 장구(葬具)의 제조를 관장하였다. 온명(溫明)은 왕공(王公) 귀족의 시신 위에 걸어놓는 장구로서 사각형의 나무 상자에 옻칠로 그림을 그린 경대(鏡臺)이다. <漢書 卷68 霍光傳 服虔注>

동원정[同源亭]  동원정(同源亭)은 경북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의 띠실마을 야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정자이다. 향토 유림들이 1746년(영조22)에 건립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한 선비였던 유광원(柳光源)의 호를 따 동원정(同源亭)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여기에는 운재(芸齋) 채시주(蔡蓍疇)와 근와(近窩) 유식(柳栻)이 지은 동원정 시가 유명하다.

동원퇴판[東園退板]  동원(東園)의 퇴판(退板). 궁궐에서 쓰는 관곽(棺槨)으로 부적합하여 퇴짜맞은 것이다. 동원은 한(漢) 나라 때의 관곽을 제조 관리하는 관서(官署)인데, 조선 시대의 장생전(長生殿)을 지칭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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