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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東遊], 동유[董帷], 동유[東維], 동유재[董幼宰], 동육릉[東六陵]


동유[東遊]  동방(東方)으로 유력(遊歷: 여러 고장을 두루 돌아다님)함. 동쪽 지방으로 놀러 다님. 동쪽 방면의 여러 고장을 두루 거침.

동유[董帷]  동유(董帷)는 동중서(董仲舒)의 장막이라는 뜻으로, 학자가 강학하는 곳을 이른다. 한(漢)나라 때의 대유(大儒)인 동중서는 일찍이 박사(博士)가 되어 학문에 전념하느라 장막을 내리고서 강송하였는데, 그가 일찍이 휘장을 깊이 내려치고 방 안에 들어앉아 글을 강독하면서[下帷講誦] 제자들을 교수(敎授)할 적에 3년 동안이나 밖을 나가지 않고 학문에 정진(精進)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깊이 들어앉아 독서에 전념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제자들이 차례로 수업을 받으면서도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漢書 卷56 董仲舒傳>

동유[董逌]  북송 말년의 학자로, 자는 언원(彦遠)이다. 동유(董逌)는 광천서발(廣川書跋)을 지어 옛 기물(器物)을 도록(圖錄)으로 싣고 해설을 덧붙였다.

동유[桐油]  오동나무 기름을 이른다.

동유[東維]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부열이 도를 얻어서 무정을 도와 천하를 소유하였고, 동유를 타며 기미를 타고 올라가 열성과 나란히 있게 되었다.[傅説得之, 以相武丁, 奄有天下, 乘东维, 骑箕尾, 而比於列星.]”라고 하였는데, 성현영(成玄英)의 소(疏)에 “동방을 유지하기 때문에 동유를 타고 기미를 탔다고 말한 것이다.[维持东方, 故言乘东维, 骑箕尾.]”라고 하였다. 뒤에는 이것으로 인하여 동방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동유사우록[東儒師友錄]  일명 명현록(名賢錄)이라고도 한다. 1682년(숙종8) 박세채가 편찬했다. 1734년(영조10) 문인 이세환이 분권하고,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인록과 자신의 추가분을 후편과 보유편으로 덧붙였다. 분류 방식은 한 사람이 여러 문파를 거쳤을 경우는 수학 정도, 존사(尊師)의 경중(輕重), 득설(得說)의 깊이를 참조하여 한 문파에 넣고 목록에 이 점을 표시했다.

동유재[董幼宰]  유재(幼宰)는 삼국 시대 촉(蜀)나라 동화(董和)의 자(字)로 제갈량과 함께 촉나라 정사를 맡아 다스린 인물이다. 제갈량은 승상이 된 후 아래의 신하들에게 관리로서 지녀야 할 자세를 말하면서 생전에 동화의 심사숙고하는 태도를 거론하였다. <三國志 卷39 蜀書 董和傳>

동육릉[東六陵]  현재의 동구릉(東九陵)에서 영조(英祖)와 정순왕후(貞純王后)의 능인 원릉(元陵), 헌종(憲宗)과 효현왕후(孝顯王后)의 능인 경릉(景陵), 익종(翼宗)과 신정왕후(神貞王后)의 능인 수릉(綏陵)을 제외한 건원릉(健元陵), 현릉(顯陵), 목릉(穆陵), 휘릉(徽陵), 숭릉(崇陵), 혜릉(惠陵)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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