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銅儀] 간의대(簡儀臺)를 말한다.
동의[銅儀] 구리로 제작한 장형(張衡)의 후풍지동의(候風地動儀)를 가리킨다. 장형(張衡)은 후한(後漢) 때의 문장가이다. 남양(南陽)의 명문가 출신으로 어려서 태학에 들어가 공부하였으며, 오경(五經)과 육예(六藝)에 정통하였다. 특히 천문(天文), 음양(陰陽), 역산(曆算)에 뛰어나 혼천의(渾天儀), 지남거(指南車), 후풍지동의(候風地動儀)를 제작하였다. 후풍지동의(候風地動儀)는 동으로 주조된 술잔처럼 생긴 형태인데, 위쪽의 덮개에는 철(凸) 자처럼 나온 곳이 있고, 주변에는 여덟 마리의 용이 각 방면을 맡고 있다. 용은 각각 하나의 구슬을 물고 있는데, 어떤 지역에 지진이 발생하면 용이 떨리면서 구슬을 떨어뜨리고, 떨어진 구슬은 아래에 있는 두꺼비의 입으로 떨어지게 된다. 한번은 용 하나가 떨려 구슬을 떨어뜨렸는데도 지진에 대한 보고가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더니, 며칠 뒤에 역마가 이르러 농서 지방에 지진이 발생했다고 보고하였다 한다. <後漢書 卷59 張衡列傳>
동의[銅儀] 동의(銅儀)는 천체를 관측하는 혼천의(渾天儀)인데, 동(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렇게도 부른다.
동의[桐椅] 동의는 시경(詩經) 소아(小雅) 담로(湛露)의 “오동나무 가래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도다. 즐겁고 편한 군자들은 술 마셔도 위의를 잃지 않네.[其桐其椅 其實離離 豈弟君子 莫不令儀]”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주(周) 나라 임금이 제후들에게 향연을 베풀 때에 연주한 악가이다.
동의[童衣] 동의(童衣)는 청의동자(靑衣童子)를 줄인 말이다. 옛날 전진왕(前秦王) 부견(苻堅)이 사람들을 물리치고 혼자서 사면령(赦免令)을 쓰고 있었는데, 쉬파리[靑蠅]가 한 마리 날아들어와 쫓으면 다시 오곤 하였다. 조금 뒤에 사람들이 사면령 내릴 것을 전부 알고 있으므로, 사실을 알아보니 한 청의동자가 길거리에 사면령이 내렸다고 소리치고 다녔다고 하였다. 그제서야 부견은 전의 쉬파리가 바로 청의동자로 화했음을 알았다 한다. <白孔六帖>
동의단자[同議單子] 각 고을 수령의 전최를 거행할 때 군정(軍政)과 관련하여 해당 영의 병사와 수사가 수령의 이름과 함께 각자에 대한 평가를 주로 달아 작성한 단자를 감사에게 보내면 감사가 이를 보고 반영하였다고 한다.
동의보감[東醫寶鑑] 조선 선조(宣祖) 때 의관(醫官) 허준(許浚)이 왕명으로 편찬한 의서(醫書)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의서를 모아서 저술한 것인데, 25권 25책으로 되어 있으며 광해군(光海君) 5년에 간행하였다. 허준(許浚)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은 중국에서 인기가 많아 서점에서 간행한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은 박지원(朴趾源)은 열하일기(熱河日記) 구외이문(口外異聞)·동의보감(東醫寶鑑) 등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동의보감이 처음 중국으로 들어간 시기는 1661년으로 청나라 칙사를 수행하고 조선에 왔던 제독 이일선(李一善)이 구해 간 것이라고 한다. 현존하는 중국본 동의보감 가운데 가장 빠른 책자는 1747년에 필사된 왕륜초본(王綸抄本)이고, 복판본 가운데 가장 빠른 것은 1763년에 간행된 벽어당옥근원간본(壁魚堂沃根園刊本)이다. 이 간본은 계미간본(癸未刊本), 제팔포장판본(第八舖藏版本) 등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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