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부득이지위덕[動以不得已之謂德] 어쩔 수 없는 뒤에 움직이는 것을 덕이라 함. 스스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 된 뒤에야 마지못해 움직이기 때문에 비난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제23편 경상초(庚桑楚)에 “어쩔 수 없는 뒤에 움직이는 것을 덕이라 하고 움직임에 자연의 나 아님이 없는 것을 일러 다스려진 것이라고 하니 이름은 상반되지만 실제로는 서로 일치하는 것이다.[動以不得已之謂德, 動無非我之謂治, 名相反而實相順也.]”라고 한 데서 보인다. 성현영(成玄英)은 “일이 임박한 뒤에 움직이고 화답만 하고 창도하지 않으며 어쩔 수 없게 된 뒤에 쓰니 성대한 덕이라고 일컬을 만하다.[夫迫而後動 和而不唱 不得已而用之 可謂盛德也]”라고 풀이하였다.
동이불화[同而不和] 겉으로는 동의(同意)를 표시(表示)하면서 내심(內心)으로는 그렇지 않음. 논어(論語) 자로(子路)에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사람과 화합하지만 뇌동하지 않은 점이 있고, 소인은 사람과 뇌동하지만 화합하지 않는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라고 하였는데, 주희(朱熹)의 집주(集注)에 “군자는 의리를 숭상하기 때문에 의견이 같지 않은 점이 있고, 소인은 이익을 숭상하니, 어떻게 화합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동이산해[動移山海] 환관들의 위세가 성대함을 비유한 말이다. 후한 순제(順帝) 때에 양황후(梁皇后)와 양기(梁冀)가 발호하여 위세가 천하를 진동하여 “거동은 산과 바다를 돌이키고, 호흡은 서리와 이슬을 변화시킨다.[擧動回山海 呼吸變霜露]”라고 하였다. <後漢書 卷108 宦者列傳> <史略 卷3 東漢>
동이성찰[動而省察] 남송(南宋)의 유학자 진덕수(眞悳秀)는 “고요함이란 사물을 대하기 전에 해당하고, 움직임이란 사물을 대했을 때에 해당하는데, 고요한 가운데 마음을 보존하여 기르면 천리의 본연 그대로를 온전히 간직할 수 있고, 움직이는 가운데 스스로 성찰하면 인욕이 싹트려고 하는 시점에서 막을 수 있다.[靜者, 未應物之時; 動者, 應物之際. 靜而存養, 則有以存天理之本然; 動而省察, 則有以防人欲於將萌.]”라고 하였다. <西山文集 卷18 衍義九經節>
동이수[童二樹] 동이수(童二樹)는 청(淸) 나라 산음(山陰) 사람인데 이름은 옥(鈺), 자는 박암(璞巖), 호는 이수이다. 산수(山水)·난죽(蘭竹)·목석(木石)에 두루 공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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