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천[動以天] 동(動)하기를 자연으로 함. 주역(周易) 무망괘(无妄卦)의 무망(无妄)은 지성(至誠)하여 사위(邪僞)가 없는 것을 이르는데, 지성은 곧 천도(天道)이므로, 무망괘의 전(傳)에 이르기를 “천리로써 동하는 것이 무망이요, 인욕으로써 동하면 망이 되는 것이니, 무망의 의의가 위대한 것이로다.[動以天爲无妄 動以人欲則妄矣 无妄之義 大矣哉]”라고 하였고, 논어(論語) 이인(里仁)의 주석에서 “이것이 도와의 거리가 멀지 않다는 것과 다른 점은 동하기를 하늘의 자연스러움으로 하기 때문이다.[此與違道不遠異者 動以天爾]”라고 하였는데, 증자(曾子)가 “부자의 도는 충과 서일 뿐이다.[夫子之道 忠恕而已矣]”라고 한 대목에 대해, 정자(程子)가 주석에서 공자의 충서를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3장의 “충서는 도와 거리가 멀지 않다[忠恕違道不遠]”는 것과 구분하여 한 말이다. 곧 중용장구(中庸章句)의 충서가 배우는 자들이 억지로 힘쓰는 인도(人道)인 반면, 공자의 충서는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천도(天道)와 마찬가지라는 의미로 쓴 것이다. 곧 ‘동이천’의 ‘천’은 천도로, 자연스러움을 의미한다.
동이하루[東夷何陋] 공자가 구이(九夷)에 살고 싶다고 하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곳은 누추하니, 어떻게 하시렵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공자가 대답하기를 “군자가 거처한다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君子居之, 何陋之有?]”라고 하였다. <論語 子罕>
동인[同仁] 동인(同仁)은 일시동인(一視同仁)의 준말로, 피차(彼此)의 차별 없이 평등하게 인애(仁愛)를 베푼다는 뜻이다. 당나라 한유(韓愈)의 원인(原人)에 “성인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고, 가까운 자에게 돈독히 하면서도 멀리 있는 자까지 들어 쓴다.[聖人一視而同仁, 篤近而擧遠.]”라고 한 데에서 나온 말이다. <韓昌黎集 卷11> 천하를 하나로 보는 천자의 인덕(仁德).
동인[銅印] 구리로 만든 인장으로 지방 수령이 차는 것이다. 지방 관원이 차는 동호부(銅虎符). 하급 관리가 차던 동제(銅製) 부신(符信)으로 지방관을 뜻한다.
동인[銅人] 구리로 주조하여 궁문(宮門)과 묘문(廟門) 앞에 세웠던 동상(銅像)이다. 동적(銅狄)이라고도 한다. 후한서(後漢書) 방술전(方術傳)에, 계자훈(薊子訓)이 장안(長安) 동쪽 패성(霸城)에서 한 늙은이와 함께 동인을 어루만지며 서로 이르기를 “마침 이것을 지어붓는 것을 보았는데 이미 5백 년이 가까웠다.[適見鑄此, 已近五百歲矣.]”라 하였다고 하였다. 참고로, 소식(蘇軾)의 시 차운황노직견증고풍 2수(次韻黃魯直見贈古風二首) 기2(其二)에 “지금 그대는 세상을 이미 살아본 사람처럼, 긴 세월 온갖 풍상 모두 지켜보았네. 구리 부어 만든 사람 매만졌던 고인처럼, 살아온 세월의 길이를 측량할 수 없다네.[今君已度世, 坐閱霜中蔕. 摩挲古銅人, 歲月不可計.]”라고 하였다.
동인[銅人] 금인(金人), 금적(金狄), 동적(銅狄)이라고도 하는바, 구리로 주조한 인형이다. 사기(史記) 권6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온 천하의 병기를 거두어서 함양에 모으고 이것을 녹여 종틀과 금인 12개를 만들었는데, 무게가 각각 천 석(石)이었다. 이것을 궁정 가운데에 두었다.[收天下兵 聚之咸陽 銷以爲鍾鐻金人十二 重各千石 置廷宮中]”라고 하였다.
동인[銅人] 동인(銅人)은 곧 한의(漢醫)가 침구를 시술하기 위해 경락혈(經絡穴)의 위치를 표시한 동제(銅製)의 인형을 말하는데, 송 인종(宋仁宗)의 의관 왕유덕(王惟德)이 최초로 이것을 주조하고, 아울러 동인침구도경(銅人針灸圖經)을 찬진(撰進)했다고 전한다.
동인[銅人] 온 몸에 침혈(鍼穴)을 뚫어서 침술(鍼術)을 연습할 때에 쓰는 구리로 만든 사람의 형상. 동인은 동인경(銅人經)의 준말이다. 송나라 왕유일(王惟一)이 천성(天聖) 5년(1027)에 조칙을 받고 동(銅)으로 만든 인체 모형에 침구(鍼灸)의 경혈(經穴)을 그려 넣어 해설한 것이 최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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